시계 수리 한 건에 1000만 원? 유망한 직업 찾는다면

2023-10-26
⌚명품 시계 감정 및 투자 전문가 김한뫼 MOI 워치 대표가 아마 우리가 잘 몰랐을 <하이엔드 시계의 세계>를 소개합니다. 세계 경매 시장과 시계 박람회를 오가며 시계 투자와 감정의 최전선에 있는 그가 전하는 흥미로운 이야기. 함께 들어보시죠.


‘시계 수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아마 동네마다 있는 금은방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어르신 세대에는 장애인이 하기 적합한 직업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도 많은 금은방에서 시계 배터리를 교체하고 있고, 하루 종일 앉아 일하는 시간이 많은 직업이기 때문이다.

파텍필립, 오데마피게, 롤렉스 등 스위스 기계식 시계에 대해 이해도가 있는 사람이라면 ‘오버홀’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오버홀(Overhaul)은 제품 또는 기기를 분해해 점검 후 재조립하는 일을 의미한다. 자동차에 엔진 오일을 교체하는 시기와 주기가 있듯, 기계식 시계 역시 시계를 분해해서 세척, 주유, 조립하는 오버홀이 필요하다. 오버홀을 해야 부품이 마모되지 않도록 시계를 잘 관리할 수 있다.

시계를 매일 착용했다면 5년에 한 번 주기로 오버홀을 받아야 한다.



명품 시계 매장에서 시계를 살 때 이런 오버홀에 관한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는 셀러가 드물다. 더불어 시계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시계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도 많기 때문에, 시계 수리 시장에 대한 정보는 극소수의 종사자 외에 대중에게는 알려진 바가 적다. 

현재 돌아가고 있는 시계 수리 시장에 대해 소개하고, 유망한 업종이자 직업으로써 젊은 친구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려 한다.


의외로 규모가 큰 시계 수리 시장

국내에는 이미 다양하고 많은 스위스 시계 브랜드가 판매되고 있다. 시계가 판매되는 한 시계 수리 역시 꾸준한 수요가 발생한다. 또한 판매 수량에 비해 서비스 센터가 소화할 수 있는 물량은 한계가 있다 보니, 사설 수리점도 장사가 잘 되는 편이다.

시계 수리 시장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는 없지만 대략적인 규모를 추산해 볼 수 있다. 2022년 판매된 시계가 약 800억 원 정도로 추정되며, 앞서 말했듯 5년 뒤인 2027년 이 시계들에 오버홀이 필요하다. 시계 오버홀 가격은 브랜드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시계 가격의 5~15%로 책정되며, 이중 실제로 수리를 접수하는 비율은 20~30% 정도 보고 있다. 이전에 판매된 시계 물량까지 더하면 사설 시계 수리 시장은 억 단위 규모를 형성하는 블루오션인 셈이다.

시계 수리를 통한 외화 벌이도 이루어 지고 있다. 가까운 일본 시장에서 소화가 안되는 수리 물량이 한국으로 넘어온다. 일본의 시계 시장은 대한민국 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하지만 수리 매장이 시장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몇 개월씩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다.

*스위스시계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2021년에 스위스 시계를 일본이 수입한 금액은 약 2조 1,270억 원, 한국은 약 1조 1,247억 원 대다. 더불어, 일본은 세이코, 시티즌, 카시오 등 대표 시계 브랜드를 중심으로 내수 시장과 수출액 규모 역시 한국보다 크다.


당신도 시계 수리 ‘장인’이 될 수 있다

필자는 시계 수리 교육을 2009년부터 진행해왔다. 일본에서 수리 업체를 운영하는 이들 중 한국에서 필자에게 수리를 배운 이들도 있다. 오랜 기간 교육을 하고 많은 수강생을 배출하면서 느낀 점은, 노력으로 이길 수 없는 타고난 손재주가 분명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손재주를 타고나지 못한 사람은 시계 수리 ‘장인’이 될 수 없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손재주가 없어도 시계 수리 장인이 될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첨단 장비들의 발전 덕분이다. 최근 시계 수리의 패러다임은 사람의 손 감각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첨단 기기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손의 감각을 키우는 것이 선행돼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첨단 기기를 활용한 정밀 수리가 앞으로 더 대중화 될 것이라는 점에서 누구나 노력하면 손재주를 극복할 수 있을 가능성이 커졌다.

다이얼 위에 시, 분, 초 침 핸즈(바늘)를 조립하는 예를 들어 보겠다.

공구를 활용해 손의 감각으로 조립하는 사진(위)과 핸즈(바늘)를 조립할 수 있는 자동화 설비들(아래).



핸즈(바늘)의 수평 맞춤, 스크래치 등 조립 할 때 가장 중요한 기술이었던 영역을 이제 기계의 정밀함으로 극복할 수 있다.

이런 자동화 설비를 보며 공장에서 사용되던 설비가 곧 대형 시계 수리점에서도 사용될 날이 머지 않았다고 느낀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듯이 시계를 넣으면 자동으로 수리가 되는 날도 올 것이다. 더불어, ‘시계 수리 실력은 곧 좋은 시계 공구를 사용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긴다면, 시계 수리 매장 창업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난 9월, 홍콩 워치 앤 클락 페어(Hong Kong’s Watch&Clock Fair)에 방문해 촬영한 최신 시계 수리 장비들. 시계 수리 도구의 대표적인 회사, 스위스의 버전(Bergeon)의 제품들이다.



몇 십 년에 걸쳐 익힐 수 있는 시계 수리 감각을 이런 장비들로 짧은 기간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 앞으로 더 좋은 설비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더불어, 이는 곧 지금 시계 수리의 노동집약적인 시스템에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돼, 가장 중요한 수익성 측면에서의 개선도 분명 있을 것이다.


도구로 난관을 돌파한 리차드 밀 시계

도구 사용의 예로 스위스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리차드 밀(Richard Mille)이 있다. 리차드 밀 시계는 최고급 신소재로 이루어져 있고 수리에도 많은 기술적 정보가 필요하다. 케이스에서 파트를 분리하는 것부터 쉽지 않은데, 리차드 밀 시계에 맞는 스크류 드라이버가 필요하며 그 종류도 5가지에 이른다. 리차드 밀 전용 스크류 드라이버는 저렴한 가격에 직구할 수 있다. 공구가 없어 수리하지 못했던 장벽은 이미 허물어졌다.

리차드 밀의 시계들.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시계를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가격은 모두 1억 원 이상.

리차드 밀 시계 수리에 필요한 드라이버들.



하지만 드라이버 준비로 끝이 아니다. 분리를 하면 수리에 몇 가지 난코스가 나온다. 국내의 유명한 장인도 한번쯤은 망쳐서 진땀 흘린 경우가 있을 정도로 난이도가 높다. 필자는 이 어려움을 스위스에서 특별 주문 제작한 공구로 돌파했다. 해당 공구로 분해 및 조립해 수리를 한다.

리차드밀 분해 사진.



리차드 밀은 국내엔 정식 서비스 센터가 없고 해외로 보내 수리가 이루어지는 브랜드다. 시계 수리를 스위스 본사에 접수하면 전체 수리일 경우, 1000만 원에 가까운 비용이 든다. 사설 수리점을 창업해 본사 수리 비용의 50% 정도만 받아도, “시계 수리나 배워 볼까”라며 가볍게 접근할 수익성을 뛰어 넘는다. 시계 공구가 손 감각을 뛰어 넘는 이런 변화는 앞으로 가속화 될 것이다.


변화의 시작, 그리고 새로운 기회

필자는 스위스 출장 마다 스위스 시계 엔지니어보다 대한민국 시계 장인의 손재주가 뛰어나다고 눈으로 보고 느꼈다. 대한민국의 수리 기술이 뛰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추측 건대, 어려서부터 젓가락질로 단련된 손재주가 큰 역할을 하지 않을까. 여기에 한국인 특유의 근면 성실함, 그리고 일 처리를 빨리빨리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향 등이 어우러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스위스 시계 학교로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이런 내용을 설명하며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우리나라 시계 수리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장인들의 노령화다. 그들의 노하우와 지식을 배울 중간 세대가 시계 수량에 비해 많지 않은 것도 주목할 점이다. 그동안 도제 방식으로만 전수된 시스템도 변화가 필요하다. 흔히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몇 년 동안 열정페이는 필수라는 생각과, 바로 취업이나 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이기에 아무에게나 전수하지 않는 폐쇄성도 존재한다.

이런 업종 특성, 그리고 세대 간의 차이와 인식을 좁힐 수 있는 열쇠가 앞서 소개한 첨단 시계 공구를 내세운 시계 수리 시스템의 변화다. 손재주가 좋은 국내 학생들에게 시계 수리라는 새롭고 유망한 진로가 개척돼 대한민국이 시계 수리 강국으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필자 김한뫼|에디팅  지희수|사진 출처  본인 제공·리차드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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