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침체를 극복한 구찌, 두 번이나 주류 패션계를 떠나 있다가 부흥에 성공한 샤넬 등. 왜 럭셔리 브랜드만 이런 게 가능한 걸까요? 박소현 저자의 <럭셔리 브랜드 인사이트> 시리즈를 통해 '브랜드의 생명력'에 대한 고찰과 아이디어를 얻어보세요. |
패션 업계의 유행은 짧다. 특정 브랜드나 스타일이 유행의 급물살을 타고 지하철이나 거리를 물들이다가도, 얼마 안 가 새로운 트렌드가 밀려와 금세 종적을 감춘다. 한동안 겨울철만 되면 발목까지 덮는 롱패딩이 유행하다 올해 들어 ‘얼죽숏’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숏패딩이 유행하는 현상이 좋은 예다.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의 풍파에 상관없이 대중의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며 열망의 대상이 되는 브랜드들이 있다. 루이비통, 구찌, 샤넬, 셀린느 등 명품 가방 수입액은 2018년 2211억 원에서 지난해 7918억 원으로 4년 사이 200% 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위 ‘명품’ 혹은 ‘럭셔리’로 칭해지는 이 브랜드들은 어떻게 몇 백 년이 지나도록 새로운 세대를 사로잡고 있을까.
<럭셔리 브랜드 인사이트>의 저자 박소현은 이런 지점을 연구한 패션학 박사이자 칼럼니스트다. 그는 럭셔리 브랜드를 ‘소유’의 대상이 아닌 ‘배움’의 대상으로 발상을 전환해 접근할 것을 권한다. ‘고전을 읽듯이, 이제는 럭셔리를 읽어라!’라고 말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11월에 출간된 도서 <럭셔리 브랜드 인사이트>. 럭셔리 브랜드의 정의와 탄생 배경부터 수 세기에 걸친 경영 노하우, 디자인 철학, 브랜딩의 메커니즘까지, 모든 것을 망라했다. 패션 분야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럭셔리 브랜드 사례가 담겨있다.
브랜더쿠. ‘고전을 읽듯이, 럭셔리를 읽어라!’라는 메시지가 흥미롭다. 럭셔리 브랜드와 고전을 어떻게 연결지을 수 있는가.
박소현 작가. 둘 모두 오랜 시간 동안 살아남은 ‘생명력’이 있다. 셰익스피어, 손자병법, 군주론 등과 같은 고전은 당시 시대를 풍미하던 화두를 던지고, 그에 대한 통찰을 준다. 교훈을 주는 이야기도 있고 깨달음을 얻게 해주는 이야기도 있다. 인간이 으레 겪는 문제는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지, 이 이야기들은 인문학적 보편성을 토대로 수세기를 통과해 우리에게까지 왔다.
많은 럭셔리 브랜드 역시 1·2차 세계대전 등 위기를 거치면서도 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이들이다. 게다가 이 브랜드들은 새로운 세대들을 매번 매료시켜 왔다. 이렇듯 수백 년의 시간에 걸쳐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점에서 고전과 일맥상통한다고 봤다.
사실 ‘고전’이라는 단어를 명시한 이유가 또 있다. 한국에서 럭셔리 소비가 대세 반열에 오른 지 오래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럭셔리 브랜드를 소비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다. 한국이 더 이상 소비국이 아닌 럭셔리 제조국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고전’이라는 단어를 붙여 배움이 있다는 뉘앙스를 주려했다.
‘럭셔리’ 라는 단어를 흔히 쓰고 있지만, 조금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럭셔리 브랜드’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사실 럭셔리를 가르치는 석학들도 짧게 정의 내리지 못한 게 럭셔리와 럭셔리 브랜드에 대한 정의다.
얄팍하나마 정의해 보자면, 다이아몬드를 쓰지 않았지만 다이아몬드 값을 받을 수 있고, 금을 쓰지 않았지만 금보다 서너 배는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게 바로 럭셔리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흔히 패션을 고부가가치의 산업이라고 한다. ‘옷’이라는 물성을 갖는 제품에 ‘브랜드’라는 부가가치가 더해 가치가 매겨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마디 더 붙여 럭셔리는 초지식집약적 초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지금처럼 대학 강단에 서고 작가로 일하기 이전에, 고가의 파티 웨어 드레스 브랜드를 직접 만들고 운영했다. 연예인 협찬도 많이 했다. 소녀시대 태연의 도쿄돔 콘서트 의상, 티나피의 시상식 의상, 미스에이 시절의 수지의 시상식 의상 등을 협찬했다. 당시 업계에서 직접 뛰며 럭셔리를 만든다는 것과 럭셔리를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도를 쌓았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최종 꿈은 아니었던지라, 박사 과정을 시작하고 강단에 서면서 브랜드를 정리하게 됐다.
박사 연구를 하며 관심을 가졌던 주제가 ‘럭셔리 브랜드의 재활성화’다. 우리나라는 많은 자영업 가게나 소규모 브랜드가 우후죽순처럼 우르르 생겨났다가 사라지곤 하기에 럭셔리 브랜드에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가 국내에 더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연구하며 느낀 통찰이 궁금하다. 분야를 불문하고 모든 럭셔리 브랜드를 꿰뚫는 특징이 있다면?
모든 럭셔리 브랜드는 ‘집요함’을 갖고 있다. 그 어떤 산업보다 고객의 열망과 욕망을 자극하고 계속해서 관심받기 위해서 집요하리만큼 늘 젊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고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 그러기 위해서 럭셔리는 ‘8가지 유’를 확고하게 실행하고 있다.
유유자적 여유로워 보여도 그 속은
유난스럽고
유별난데 그 덕분에
유명하다. 그래서
유사품이 있어도
유일무이한 매력으로
유독 높은 가격에도 사랑받으며
유리한 위치에서 고객의 열망을 채워주는 것이
바로, 럭셔리이다.
럭셔리는 이 ‘8가지 유’ 중에서 그 어느 하나도 타협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집요하게 자기 가치의 위치를 공고히 한다.
럭셔리 브랜드가 오랜 기간 여러 세대에 걸친 소비자를 사로잡은 저력 역시 집요함에서 오는 것인가?
그렇다고 본다. 럭셔리 브랜드는 그들은 히스토리(History)를 헤리티지(Heritage)로 바꿔서 브랜드 자산으로 만들 줄 안다.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인류의 유산을 뜻하는 ‘헤리티지’는 단순히 브랜드의 역사가 오래됐다고 해서 생기지 않는다. 역사의 아카이빙에서 현재까지 살아남을 만큼 양질의 콘텐츠가 있어야 ‘브랜드 고유의 헤리티지’를 획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몇 년 전 루이비통이 온라인 게임 캐릭터의 옷을 만들어 팔겠다고 밝혔을 때, 모두가 경악했다. 패션 산업이 디지털 기술인 NFT에 뛰어드는 선구적인 사례라는 평도 있었지만, 그런 것까지 만들어 돈을 벌어야 하냐는 비난도 받았다. 루이비통이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루이비통의 소비자 중 ‘중국 여성’의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의 절반은 여성이다. 루이비통의 소비자 일부 역시 온라인 게임의 헤비 유저였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구현한 아바타도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의 옷을 입기를 원했다. 동시에 현실에선 루이비통을 살 수 있는 여력이 없지만, 가상의 게임 공간에서 자신의 분신에게 루이비통을 입히며 대리만족하는 고객도 있었다.
루이비통이 2019년 선보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스킨(치장용 아이템).
이처럼 럭셔리는 브랜드는 사람들을 열광시키기 위해 소비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알아보고 조사하고 실행한다.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으로까지, 고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진출한다. 그곳에서 고객이 지금 원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열망하고 욕망할 만한 것을 만들어내서, 팔려고 들지 않고 사고 싶게 만들어 낸다. 그것이 곧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오랜 브랜드임에도 젊은 세대를 열광하게 하는 럭셔리 헤리티지의 저력이다.
국내에서도 럭셔리 브랜드에 대한 산업 규모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해외 브랜드가 지배적이고, 그런 현실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국내에서 럭셔리 브랜드가 나올 수 있을까?
현재 많은 해외 럭셔리 브랜드가 테스트 마켓으로 한국을 삼고 있다. 해외 브랜드들의 범람으로 인해 국내 소비자들의 눈은 높아질 수 밖에 없고 이 기준을 맞추기 위해 인테리어, 이벤트 기획, 팝업 및 프로모션 기획 등이 유관 사업 역시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집필한 책 <럭셔리 브랜드 인사이트>에서 가방, 안경 그리고 패션 의류 분야에서 국내 럭셔리 브랜드가 탄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국이 럭셔리 소비국을 넘어 럭셔리 제조국이 됐으면 하는 바램을 나타냄과 동시에, 한국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말하고 싶었다.
일례로 시계를 들어보자. 알고 있는 국내 시계 브랜드가 있는가? 아마 잘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참고할 만한 사례는 바로 미국이다. ‘시놀라(Shinola)’는 미국 대통령의 시계라는 명성으로 잘 알려진 브랜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시놀라 시계만 여러 개를 갖고 있었다고 하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공식 석상에세 세계 정상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시놀라 시계를 보여주는 오바마 전 대통령. (©AP/Paul Sancya )
사실 시놀라는 시계이기 전에 구두약 브랜드의 이름이었다. 창업자가 ‘미국스러운’ 브랜드 이름을 짓고 싶어 상표권을 사서 시계 브랜드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시놀라 시계 사례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공장이 위치한 소재지가 미시간 주의 디트로이트라는 것이다다. 브랜드가 만들어지던 2011년 당시, 디트로이트는 GM·크라이슬러 공장이 빠져나가면서 쇠락하고 있는 도시였다. 시놀라는 마치 엔진을 재점화하듯, 자동차를 조립하던 숙련된 기술공들과 넓은 부지를 이용해 브랜드 이름, 디트로이트라는 도시, 그리고 미국식 제조업을 되살렸다.
시놀라는 미국 제조업 부활의 상징이 됐다. 가격대는 롤렉스보다 저렴한 편이다.
한국 역시 숙련된 기술이 있고 제조업이 발달한 나라다. 하지만 현재는 럭셔리를 유통이나 투자에 치중해 접근하고 있다. 물론, 유통이나 투자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쉽고 위험 부담이 적다. 하지만 남의 것을 팔아주는 유통만으로는 계속해서 럭셔리 소비국 밖에 될 수 없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흔히 럭셔리 브랜드를 일군 사람 혹은 패션 디자이너라면 잘 교육 받은 사람의 면모 보다는 엄청난 괴짜이거나 덕후이기를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디자이너는 그들 모두가 덕후라고 하는 게 옳을 것 같다. 늘 영감에 목말라하며 새로운 덕질 대상을 찾아 헤매고, 트렌드나 인사이트의 조짐을 발견하면 그의 결과물에 덕력을 쏟아부으니 하니 말이다. ‘괴짜’스러운 덕력이나 면모는 오히려 디자이너들보다 CEO나 창업자가 아닐까 한다. 덕력을 동력 삼아 비즈니스의 돌파구를 찾아낸 이들이기 때문이다.
럭셔리 브랜드로 성공을 일군 사람들 중에는 평범한 스타일은 없다. 영면하기 전까지 바느질을 했던 샤넬, 페라리에 무시당해 람보르기니를 만든 페루치오, 목수와 짐꾼에서 시작된 루이비통의 성공담, 만화책을 팔다가 수천만 원짜리 책을 기획한 타셴, 겔랑의 유리천장을 깬 첫 번째 여성 CEO 베로니크 쿠르투아 등 그들이 살았던 삶 자체가 이야깃거리다.
업계 종사자가 아닌 사람들도 럭셔리 브랜드에서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까?
기업 내 비즈니스 확장, 혹은 자신의 사업 등 새로운 과제에 당면한 이들과 평범한 직장인 모두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사업과 산업은 계속해서 성장과 확장을 도모할 수밖에 없고, 때로는 그 성장의 깊이에 ‘고급화’가 필요하다. 전에 없는 기술의 혁신을 노리는 사람에게도 새로운 아이디어나 인사이트가 필요하다. 그럴 때 같은 업종 같은 분야에서 답을 찾기보다 다른 분야로 시야를 넓혀보기를 추천한다. 다채롭고 새로운 방향성을 찾을 수 있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퍼스널 브랜딩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럭셔리의 시작은 가내수공업처럼 작았던 경우가 많고, 그 시작이 정말 보잘것없던 경우도 있었다. 실전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책상에 앉아만 있어서는 나오지 않는다. 온 몸으로 부딪쳐 본 이들의 방법과 행보가 많은 영감을 줄 것이다.
Coming Soon📢 박소현 저자가 구체적인 브랜드 사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를 브랜더쿠에서 풀어낼 예정입니다. |
에디터 지희수ㅣ사진 출처 다반·라이엇게임즈·시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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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에 출간된 도서 <럭셔리 브랜드 인사이트>. 럭셔리 브랜드의 정의와 탄생 배경부터 수 세기에 걸친 경영 노하우, 디자인 철학, 브랜딩의 메커니즘까지, 모든 것을 망라했다. 패션 분야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럭셔리 브랜드 사례가 담겨있다.
브랜더쿠. ‘고전을 읽듯이, 럭셔리를 읽어라!’라는 메시지가 흥미롭다. 럭셔리 브랜드와 고전을 어떻게 연결지을 수 있는가.
박소현 작가. 둘 모두 오랜 시간 동안 살아남은 ‘생명력’이 있다. 셰익스피어, 손자병법, 군주론 등과 같은 고전은 당시 시대를 풍미하던 화두를 던지고, 그에 대한 통찰을 준다. 교훈을 주는 이야기도 있고 깨달음을 얻게 해주는 이야기도 있다. 인간이 으레 겪는 문제는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지, 이 이야기들은 인문학적 보편성을 토대로 수세기를 통과해 우리에게까지 왔다.
많은 럭셔리 브랜드 역시 1·2차 세계대전 등 위기를 거치면서도 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이들이다. 게다가 이 브랜드들은 새로운 세대들을 매번 매료시켜 왔다. 이렇듯 수백 년의 시간에 걸쳐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점에서 고전과 일맥상통한다고 봤다.
사실 ‘고전’이라는 단어를 명시한 이유가 또 있다. 한국에서 럭셔리 소비가 대세 반열에 오른 지 오래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럭셔리 브랜드를 소비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다. 한국이 더 이상 소비국이 아닌 럭셔리 제조국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고전’이라는 단어를 붙여 배움이 있다는 뉘앙스를 주려했다.
‘럭셔리’ 라는 단어를 흔히 쓰고 있지만, 조금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럭셔리 브랜드’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사실 럭셔리를 가르치는 석학들도 짧게 정의 내리지 못한 게 럭셔리와 럭셔리 브랜드에 대한 정의다.
얄팍하나마 정의해 보자면, 다이아몬드를 쓰지 않았지만 다이아몬드 값을 받을 수 있고, 금을 쓰지 않았지만 금보다 서너 배는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게 바로 럭셔리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흔히 패션을 고부가가치의 산업이라고 한다. ‘옷’이라는 물성을 갖는 제품에 ‘브랜드’라는 부가가치가 더해 가치가 매겨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마디 더 붙여 럭셔리는 초지식집약적 초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지금처럼 대학 강단에 서고 작가로 일하기 이전에, 고가의 파티 웨어 드레스 브랜드를 직접 만들고 운영했다. 연예인 협찬도 많이 했다. 소녀시대 태연의 도쿄돔 콘서트 의상, 티나피의 시상식 의상, 미스에이 시절의 수지의 시상식 의상 등을 협찬했다. 당시 업계에서 직접 뛰며 럭셔리를 만든다는 것과 럭셔리를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도를 쌓았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최종 꿈은 아니었던지라, 박사 과정을 시작하고 강단에 서면서 브랜드를 정리하게 됐다.
박사 연구를 하며 관심을 가졌던 주제가 ‘럭셔리 브랜드의 재활성화’다. 우리나라는 많은 자영업 가게나 소규모 브랜드가 우후죽순처럼 우르르 생겨났다가 사라지곤 하기에 럭셔리 브랜드에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가 국내에 더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연구하며 느낀 통찰이 궁금하다. 분야를 불문하고 모든 럭셔리 브랜드를 꿰뚫는 특징이 있다면?
모든 럭셔리 브랜드는 ‘집요함’을 갖고 있다. 그 어떤 산업보다 고객의 열망과 욕망을 자극하고 계속해서 관심받기 위해서 집요하리만큼 늘 젊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고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 그러기 위해서 럭셔리는 ‘8가지 유’를 확고하게 실행하고 있다.
유유자적 여유로워 보여도 그 속은
유난스럽고
유별난데 그 덕분에
유명하다. 그래서
유사품이 있어도
유일무이한 매력으로
유독 높은 가격에도 사랑받으며
유리한 위치에서 고객의 열망을 채워주는 것이
바로, 럭셔리이다.
럭셔리는 이 ‘8가지 유’ 중에서 그 어느 하나도 타협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집요하게 자기 가치의 위치를 공고히 한다.
럭셔리 브랜드가 오랜 기간 여러 세대에 걸친 소비자를 사로잡은 저력 역시 집요함에서 오는 것인가?
그렇다고 본다. 럭셔리 브랜드는 그들은 히스토리(History)를 헤리티지(Heritage)로 바꿔서 브랜드 자산으로 만들 줄 안다.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인류의 유산을 뜻하는 ‘헤리티지’는 단순히 브랜드의 역사가 오래됐다고 해서 생기지 않는다. 역사의 아카이빙에서 현재까지 살아남을 만큼 양질의 콘텐츠가 있어야 ‘브랜드 고유의 헤리티지’를 획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몇 년 전 루이비통이 온라인 게임 캐릭터의 옷을 만들어 팔겠다고 밝혔을 때, 모두가 경악했다. 패션 산업이 디지털 기술인 NFT에 뛰어드는 선구적인 사례라는 평도 있었지만, 그런 것까지 만들어 돈을 벌어야 하냐는 비난도 받았다. 루이비통이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루이비통의 소비자 중 ‘중국 여성’의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의 절반은 여성이다. 루이비통의 소비자 일부 역시 온라인 게임의 헤비 유저였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구현한 아바타도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의 옷을 입기를 원했다. 동시에 현실에선 루이비통을 살 수 있는 여력이 없지만, 가상의 게임 공간에서 자신의 분신에게 루이비통을 입히며 대리만족하는 고객도 있었다.
루이비통이 2019년 선보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스킨(치장용 아이템).
이처럼 럭셔리는 브랜드는 사람들을 열광시키기 위해 소비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알아보고 조사하고 실행한다.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으로까지, 고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진출한다. 그곳에서 고객이 지금 원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열망하고 욕망할 만한 것을 만들어내서, 팔려고 들지 않고 사고 싶게 만들어 낸다. 그것이 곧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오랜 브랜드임에도 젊은 세대를 열광하게 하는 럭셔리 헤리티지의 저력이다.
국내에서도 럭셔리 브랜드에 대한 산업 규모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해외 브랜드가 지배적이고, 그런 현실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국내에서 럭셔리 브랜드가 나올 수 있을까?
현재 많은 해외 럭셔리 브랜드가 테스트 마켓으로 한국을 삼고 있다. 해외 브랜드들의 범람으로 인해 국내 소비자들의 눈은 높아질 수 밖에 없고 이 기준을 맞추기 위해 인테리어, 이벤트 기획, 팝업 및 프로모션 기획 등이 유관 사업 역시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집필한 책 <럭셔리 브랜드 인사이트>에서 가방, 안경 그리고 패션 의류 분야에서 국내 럭셔리 브랜드가 탄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국이 럭셔리 소비국을 넘어 럭셔리 제조국이 됐으면 하는 바램을 나타냄과 동시에, 한국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말하고 싶었다.
일례로 시계를 들어보자. 알고 있는 국내 시계 브랜드가 있는가? 아마 잘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참고할 만한 사례는 바로 미국이다. ‘시놀라(Shinola)’는 미국 대통령의 시계라는 명성으로 잘 알려진 브랜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시놀라 시계만 여러 개를 갖고 있었다고 하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공식 석상에세 세계 정상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시놀라 시계를 보여주는 오바마 전 대통령. (©AP/Paul Sancya )
사실 시놀라는 시계이기 전에 구두약 브랜드의 이름이었다. 창업자가 ‘미국스러운’ 브랜드 이름을 짓고 싶어 상표권을 사서 시계 브랜드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시놀라 시계 사례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공장이 위치한 소재지가 미시간 주의 디트로이트라는 것이다다. 브랜드가 만들어지던 2011년 당시, 디트로이트는 GM·크라이슬러 공장이 빠져나가면서 쇠락하고 있는 도시였다. 시놀라는 마치 엔진을 재점화하듯, 자동차를 조립하던 숙련된 기술공들과 넓은 부지를 이용해 브랜드 이름, 디트로이트라는 도시, 그리고 미국식 제조업을 되살렸다.
시놀라는 미국 제조업 부활의 상징이 됐다. 가격대는 롤렉스보다 저렴한 편이다.
한국 역시 숙련된 기술이 있고 제조업이 발달한 나라다. 하지만 현재는 럭셔리를 유통이나 투자에 치중해 접근하고 있다. 물론, 유통이나 투자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쉽고 위험 부담이 적다. 하지만 남의 것을 팔아주는 유통만으로는 계속해서 럭셔리 소비국 밖에 될 수 없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흔히 럭셔리 브랜드를 일군 사람 혹은 패션 디자이너라면 잘 교육 받은 사람의 면모 보다는 엄청난 괴짜이거나 덕후이기를 기대하게 되는 것 같다.
디자이너는 그들 모두가 덕후라고 하는 게 옳을 것 같다. 늘 영감에 목말라하며 새로운 덕질 대상을 찾아 헤매고, 트렌드나 인사이트의 조짐을 발견하면 그의 결과물에 덕력을 쏟아부으니 하니 말이다. ‘괴짜’스러운 덕력이나 면모는 오히려 디자이너들보다 CEO나 창업자가 아닐까 한다. 덕력을 동력 삼아 비즈니스의 돌파구를 찾아낸 이들이기 때문이다.
럭셔리 브랜드로 성공을 일군 사람들 중에는 평범한 스타일은 없다. 영면하기 전까지 바느질을 했던 샤넬, 페라리에 무시당해 람보르기니를 만든 페루치오, 목수와 짐꾼에서 시작된 루이비통의 성공담, 만화책을 팔다가 수천만 원짜리 책을 기획한 타셴, 겔랑의 유리천장을 깬 첫 번째 여성 CEO 베로니크 쿠르투아 등 그들이 살았던 삶 자체가 이야깃거리다.
업계 종사자가 아닌 사람들도 럭셔리 브랜드에서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까?
기업 내 비즈니스 확장, 혹은 자신의 사업 등 새로운 과제에 당면한 이들과 평범한 직장인 모두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사업과 산업은 계속해서 성장과 확장을 도모할 수밖에 없고, 때로는 그 성장의 깊이에 ‘고급화’가 필요하다. 전에 없는 기술의 혁신을 노리는 사람에게도 새로운 아이디어나 인사이트가 필요하다. 그럴 때 같은 업종 같은 분야에서 답을 찾기보다 다른 분야로 시야를 넓혀보기를 추천한다. 다채롭고 새로운 방향성을 찾을 수 있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퍼스널 브랜딩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럭셔리의 시작은 가내수공업처럼 작았던 경우가 많고, 그 시작이 정말 보잘것없던 경우도 있었다. 실전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책상에 앉아만 있어서는 나오지 않는다. 온 몸으로 부딪쳐 본 이들의 방법과 행보가 많은 영감을 줄 것이다.
박소현 저자가 구체적인 브랜드 사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를 브랜더쿠에서 풀어낼 예정입니다.
에디터 지희수ㅣ사진 출처 다반·라이엇게임즈·시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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