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3가역 8번 출구의 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에 토마토와 치즈 냄새까지 '반칙에 가까운 조합'이 군침 돌게 만든다. 계단을 오르고 나면 이 맛있는 냄새의 근원지를 단번에 찾을 수 있다. 보도 쪽으로 향해 있는 오픈 주방 앞에 어마어마한 대기 줄이 몰려있는 이곳은 바로 '올디스 타코'. 지난해 2월에 4.5평 규모로 문을 연 '한국식 타코 전문점'이다.
약 2년 차 로컬 브랜드지만 이력이 화려하다. 트렌디한 맛집들의 격전지로 불리는 더현대 서울에서 지난 4월 팝업스토어로 오픈런을 이끌었고, 연이어 지난 8월에는 농심의 스테디셀러 과자 '포테토칩'과 협업해 포테토칩 올디스 타코맛까지 출시했다.
이 작은 매장에서 하루에 판매하는 타코만 600여 개, 최고 매출일 때는 무려 800개까지 팔린다. 론칭과 동시에 성공 가도에 오른 올디스 타코는 2호점을 추가 출점한 데 이어 올디스 핫도그 브랜드까지 확장했고 직원 수는 30명으로 늘었다.
올디스 타코를 만든 건 외식업 6년 차인 김항근 대표다. 본래 타코를 즐겨 먹지도, 만들어 본 적도 없던 그였지만 목표만큼은 확고했다. 우리 매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한국식 타코를 완성하겠다는 것. 김항근 대표를 만나 오픈과 동시에 핫플로 거듭난 올디스 타코의 비결을 들어봤다.
올디스 타코 매장 및 포테토칩 올디스 타코 맛
외식업에 뛰어든 무대 미술 전공자
빈티지 덕후. 김항근 대표의 대학 시절을 압축해서 표현하면 이렇다. 본래 무대 미술을 전공한 그는 유독 빈티지한 무대를 애정했다. 오죽하면 옛날 것의 매력이 더 좋다는 의미로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 구관이 명관)'를 외치고 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선호하는 무대 스타일이 뚜렷한 탓에 다른 이들과의 협업이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원하는 길이 있는데 엉뚱한 곳으로 향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작업 과정의 대부분이 설레지 않아서 혼란스럽기만 했다. 이런 경험을 반복하다 보니 급기야 자신이 진정으로 무대 미술을 좋아하는지조차 헷갈렸다.
결국 대학교를 2년간 휴학했다. 단, 무작정 휴식을 취하는 데만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면 여러 경험에 도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패스트푸드점 라이더, 인형탈 아르바이트 등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일들을 이어갔다.
하지만 돌고 돌아 결국 마음이 향한 곳은 무대미술이었다. 나만의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고, 고민이 깊어지던 찰나에 의외의 곳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바로 '식당'이다. 손님이 관객, 매장이 무대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면 하나의 식당을 완성하는 것이 디테일하게 무대를 구현하는 작업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과 무대라는 결과물만 다를 뿐 사람들이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는 점에서 작업의 본질은 동일했다.
김항근 올디스 타코 대표
그렇게 2018년 김 대표는 용산구 어느 건물의 3층에 빈티지한 와인바를 열며 외식업에 첫발을 들였다. 와인바를 창업한 이유는 단순하다. 진짜 좋아하는 메뉴로 장사를 하고 싶어서였다. 김치도 못 먹을 정도로 심하게 야채를 편식하지만 파스타와 고기 메뉴만큼은 잘 먹는 그였기에, 이 2가지 음식과 잘 어울리는 업태인 와인바를 선택했다.
요리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밤낮으로 레시피를 연구했고, 원하는 맛을 완성한 끝에 야심 차게 매장을 열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손님 수가 빠르게 늘었다. 열심히 메뉴를 개발했다는 자부심은 있었지만 초보 사장님 입장에선 맛있어 하는 손님들의 표정을 보는 경험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진짜 맛있으세요?"라고 질문을 건넨 이유다.
그런데 와인바가 성행하던 2021년 9월, 김 대표는 갑자기 을지로3가역 주변 건물의 2층으로 와인바를 이전했다. 매장 운영이 안정화됐음에도 굳이 상권을 옮긴 건 '을지로'가 김 대표의 꿈의 무대였기 때문이다. 인쇄소 골목을 비롯해 투박하게 페인트칠 된 상가까지 곳곳에서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을지로는 빈티지 덕후의 마음에 쏙 들 수밖에 없었다. 사실 용산구에서 와인바를 시작한 것도 을지로에서 적합한 매물을 찾지 못해서였다.
그토록 바랬던 을지로 상권으로 이전하면서 매장명도 '올디스 하우스'로 바꿨다. 수없이 외치고 다녔던 올디스 벗 구디스에서 착안한 브랜드명으로, 이는 올디스 타코의 시작점이 됐다.
올디스 하우스의 인테리어 및 파스타 메뉴
불리한 상권에 정면돌파하다
와인바를 운영하던 김 대표는 어떤 계기로 타코 전문점을 차린 걸까? 사실 처음부터 타코를 판매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인쇄소 골목 주변의 마음에 드는 매물을 덜컥 계약한 후, 어떤 메뉴를 선보일지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이 타코였다. 지금의 올디스 타코 1호점 공간이 2022년 10월에 매물로 나온 것이 신호탄이 됐다. 을지로 핵심 상권이 아닌 인쇄소 골목 입구 쪽에 자리하고 면적도 약 4.5평이라 임대료가 저렴했다. 마침 1층에서도 장사를 하고 싶었지만 대부분 2~3층보다 임대료가 비싸서 고민 중이던 김 대표에게는 적합한 장소였다. 매물을 살펴본 후 다음날에 곧바로 계약한 이유다.
문제는 판매할 아이템이 부재하다는 것이었다. 이 좁은 공간에서 어떤 음식으로 승부해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더구나 보도와 붙어있긴 해도 거리 자체의 볼거리가 부족한 탓에 행인의 대부분이 스마트폰만 쳐다보며 주변 건물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인기 없는 거리에다 협소한 매장까지, 식당을 열기엔 최악의 조건이었다.
김 대표는 이 2가지 문제에 정면돌파할 아이템으로 타코를 떠올렸다. 2022년에 우연히 타코를 처음 먹고 상당히 만족했던 경험이 불현듯 생각난 것. 싫어하는 야채가 가득했지만 타코의 특성상 고기 육즙이 풍부하고 소스 맛이 강렬해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지독한 야채 편식자인 자신조차 만족할 정도면 다른 손님들에게도 소구력이 있을 거라고 내다봤다. 게다가 타코는 손에 들고 빠르게 먹는 음식이라 굳이 넓은 매장 홀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매장 밖에서 간단히 먹거나, 포장 주문하는 손님이 많을 만한 메뉴였다. 또한 요리 과정에서 풍기는 고기 및 각종 향신료 냄새로 행인들의 이목을 끌기에도 용이해 보였다.
올디스타코 매장 앞에 이어진 대기줄
그렇다고 올디스 타코의 성공 비결을 '상권에 어울리는 메뉴 선정'으로만 정의하기엔 무리가 있다. 메뉴 종류를 정한 건 전초전에 불과할 뿐, 올디스 타코는 4가지 세부 전략을 펼치며 핫한 맛집으로 자리매김했다.
마장동 한우와 청양고추로 만든 K-타코
올디스 타코는 '한국식 타코 전문점'으로 식당 콘셉트를 잡았다. 이유는 3가지다. 먼저 김 대표가 전국의 주요 타코 맛집들을 순회한 결과 대부분의 맛집이 오리지널 스타일의 정통 타코를 추구했다. 고기의 육향을 그대로 살리고, 이국적인 소스 맛을 극대화하는 등 정통 타코를 기준으로 보면 훌륭한 맛이지만 올디스 타코가 공략해야 할 상권 고객들의 입맛에는 낯설 위험이 있었다.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올디스 타코가 오픈할 거리에 주로 인근 인쇄소 및 회사의 직원들이 오갔는데, 대부분의 연령대가 중년층이었다. 식당이 입소문 나려면 가장 먼저 상권의 현재 고객들부터 사로잡아야 한다고 판단했고, 이 전략에서 보면 오리지널 타코를 고수하는 건 적합하지 않았다. 호불호 없이 즐길 수 있는 한국인 입맛에 맞춘 새로운 타코가 필요했다.
게다가 정통의 맛으로 승부하는 맛집이 즐비한 상황에서 굳이 똑같은 콘셉트로 대결하는 것도 주효하지 않다고 봤다. 오히려 '한국식 타코 전문점'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생성하는 것이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마지막으로 원래 멕시코 음식이지만 재료와 레시피에 따라 다양하게 현지화되는 타코의 매력을 고려했을 때도 한국식 타코를 개발하고 싶었다. 예컨대 오키나와에서는 안남미로 지은 밥 위에 타코의 주재료들을 듬뿍 올린 덮밥 형식의 타코 라이스가 인기 있듯, 한국을 연상시킬 수 있는 시그니처 메뉴를 꿈꿨다.
한국스러운 맛을 개발하기 위해 김 대표는 가장 먼저 오리지널 레시피부터 섭렵했다. 기존의 타코 요리법을 이해하지 못한 채 한국식 맛을 표방하는 건 기본기를 쌓지 않고 편법을 택하는 길이라고 여겼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해외 유튜브 영상들을 정주행하고, 프랜차이즈의 타코 메뉴를 포장해 성분표를 낱낱이 분석하며 연구를 반복했다.
그렇게 레시피를 숙지함으로써 올디스 타코만의 4가지 메뉴(올디스 타코, 비리아 타코, 타코 라이스, 메가밤 스낵)를 완성했다. 기본 버전인 올디스 타코를 비롯해 콘소메 수프를 넣어서 구운 비리아 타코, 밥으로 만든 타코 라이스, 나초 위에 각종 토핑을 뿌린 메가 밤 스낵까지 저마다의 개성을 갖추고 있다.
시계 방향 순서대로 올디스 타코, 비리야 타코, 타코 라이스, 메가 밤 스낵
모두 기존 레시피를 바탕으로 한국인 입맛에 맞춰 국산 식재료들을 더하거나, 일부 조리법을 변경해 개발한 메뉴다. 예컨대 비리아 타코에는 마장동 정육점에서 공급받은 한우 차돌과 양지를 활용한다.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 타코를 목표 삼아 주재료인 고기를 한우로 교체했다. 마찬가지로 타코 라이스에도 마장동 정육점에서 구매한 소고기 및 돼지고기를 토마토 소스에 조려서 올린다. 또한 본래 비리아 타코는 콘소메 수프에 찍어 먹는 음식인데, 포장 주문해서 먹기엔 불편하기 때문에 아예 조리 중에 수프를 넣어서 토르티야를 튀기듯 굽는 방식으로 바꿨다. 살사 소스 역시 멕시코에서는 양파, 토마토, 고수, 라임주스, 소금 등을 섞어서 제조하지만 올디스 타코에선 청양고추를 가미해 한국의 알싸한 매운 맛을 곁들인다.
동시에 한국인 입맛에 호불호가 갈릴 만한 재료의 맛을 완화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했다. '고수'가 대표적이다. 타코에 빠질 수 없는 식재료지만 특유의 향 때문에 호불호가 나뉘므로 향이 가장 덜한 고수를 쓰고 있다. 원산지마다 향의 세기가 달라서 전국을 수소문했고, 끝내 경동시장에서 향이 가장 덜한 고수를 찾는 데 성공했다.
"'한국식 타코란 이런 거에요'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그 메시지가 잘 전달될수록 손님들에게 올디스 타코의 이미지도 뚜렷해질 테니까요.
식재료 하나, 레시피의 일부를 수정하기까지 수차례 연구를 거듭했죠."
-김항근 올디스 타코 대표- |
주방을 무대로 만든 퍼포먼스
'분식집처럼 타코 요리 과정을 보여주면 어떨까?'
김 대표의 머릿속에서 번뜩인 이 아이디어는 올디스 타코가 오픈 초반부터 빠르게 주목받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타코 맛집들을 방문할 때마다 그에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바로 꽁꽁 숨겨진 주방의 위치다. 고기를 굽고, 소스를 졸이고, 토르티야를 뒤집는 등 타코 요리 과정에서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가 다양한데 손님에게 공개하지 않는 점이 의아했다. 김 대표가 처음부터 오픈 주방형 인테리어를 고려한 이유다.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켜준 건 분식집 앞에서 얻은 영감이었다. 매장 전면에서 큰 철판에 떡볶이를 만들며 시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분식집을 보고, 타코 전문점에도 충분히 접목 가능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좁은 보도와 맞닿아있는 매물 특성을 고려해 보도와 마주 보도록 오픈 주방을 설계했다. 매장 밖에서도 구경 가능한 주방 구조를 만든 셈이다. 그리들(철판) 위에서 타코를 요리하는 퍼포먼스와 풍미 가득한 냄새로 행인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였다. 오픈 주방의 효과는 강력했다. 현란하게 타코를 완성하는 솜씨를 본 행인들은 걸음을 멈췄고, 바람 부는 가을과 겨울에는 을지로3가역 8번 출구 안쪽까지 타코 냄새가 진동해서 "냄새 맡고 방문했다"고 말하는 손님들도 급증했다.
올디스 타코의 오픈 주방 및 타코 메뉴
손님들에게 가감 없이 보이는 오픈 주방의 특성을 감안해 퍼포먼스를 세심히 설계한 묘수도 효과적이었다. 그리들 위에서 고기를 구울 때의 손 동작, 토르티야를 겹쳐놓는 방식, 타코에 각종 재료를 쌓는 순서까지 꼼꼼히 보완하며 군침 돌게 만드는 퍼포먼스를 완성했다. 동시에 청결을 위한 퍼포먼스 설계에도 힘을 쏟았다. 올디스 타코에선 아무리 바빠도 요리가 끝날 때마다 흘린 소스들을 즉시 닦고, 그리들 전용 행주를 깔끔하게 접어 놓는 것이 원칙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청결을 등한시하지 않는 것. 김 대표가 팀원들에게 매일 아침 당부하는 자세다.
그간 올디스 타코를 프랜차이즈화하자는 투자 제안을 모두 거절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지점을 급격히 늘리는 데 성공한다 해도, 모든 매장이 본점만큼의 디테일하고 청결한 퍼포먼스를 유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오픈 주방에서의 퍼포먼스는 올디스 타코에게 가장 효과적인 홍보 콘텐츠로 기능하기도 했다. 손님들이 타코 요리 과정을 촬영해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고, 이 자발적인 리뷰들이 쌓이며 올디스 타코가 SNS에서 핫한 맛집으로 떠올랐다. 여기에 스스로 콘텐츠의 재미를 높이기 위한 팀원들의 노력이 더해지며 홍보 효과가 극대화됐다. 화려한 모자를 쓰거나 선글라스를 낀 채 타코를 굽고 응대하는 광경은 올디스 타코 특유의 힙한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재료를 쌓는 순서와 행주를 접는 방식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사소한 부분들을 챙기는 노력들이 쌓여야 손님의 시선을 끌 수 있습니다.
하나씩 대충 하고 타협하기 시작하면 식당의 퍼포먼스를 완성할 수 없어요."
-김항근 올디스 타코 대표- |
올디스 타코 특유의 힙한 분위기를 뽐내는 매장 팀원들
모서리 하나까지 의도해 만든 빈티지함
올디스 타코가 오픈 직후부터 주목받은 또 다른 비결은 '빈티지한 매장'에 있다. 빈티지 덕후인 김 대표의 취향이 한껏 반영된 결과다. 전체적인 콘셉트는 1990년대 미국에 있을 법한 타코 가게로 잡았다. 올디스 타코를 기획할 당시만 해도 국내 대다수의 타코 맛집들이 멕시코 현지의 분위기를 강조한 유니폼, 간판, 식기, 오브제 등을 활용했지만 김 대표의 접근법은 달랐다. 한국식 타코라는 새로운 메뉴 카테고리를 제안한 것처럼, 매장 디자인 기획에서도 다른 타코 맛집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방식을 꾀했다. 손님들을 단번에 몰입시킬 수 있는 무대 같은 매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콘셉트 방향성을 잡은 후엔 1990년대 미국 영화, 디자인 관련 잡지 등을 보며 당시에 유행하던 디자인 요소들을 접목시켰다. 강렬한 레드 톤의 네온사인형 간판, 회색빛 금속 재질로 꾸민 파사드(건물 외벽), 파사드에 밀도 있게 배치한 포스터와 스티커 등이 그 결과물이다. 회색 배경에 여러 색깔을 칠한 다채로운 조합은 주변 상가들과 구분되기에 충분했고, 특히 저녁에는 네온사인 조명 덕분에 매장이 더욱 돋보였다.
김 대표는 무대 미술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 인테리어 곳곳에 빛바랜 세월감도 채웠다. 오랫동안 사용했을 때 닳기 쉬운 부분에 의도적으로 스크래치를 내고, 노포의 거친 공간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페인트 칠을 했다가 벗겨냈다. 무대 미술을 전공하던 시절에 고민거리였던 빈티지한 취향이 오히려 식당을 디자인할 땐 비장의 무기가 됐다.
올디스 타코 매장 시공 과정 및 현재 외관
"식당 인테리어를 기획할 때 전시물처럼 부피가 큰 오브제를 배치하면 끝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손님들의 몰입감을 결정하는 건 우연히 마주하는 사소한 부분들입니다.
'이런 부분까지 의도했다고?'라는 인식을 줄 수 있어야 해요."
-김항근 올디스 타코 대표- |
스마트폰 한 대로 확보한 1만 팔로워
올디스 타코는 이색적인 메뉴와 매장뿐 아니라 독특한 인스타그램 계정으로도 유명하다. 팔로워 수만 무려 1만 명, 릴스(짧은 영상) 조회 수는 평균 1만에서 최고 13만 회까지 기록한다. 스마트폰으로만 콘텐츠를 만들고, 지금껏 단 한 번도 광고를 집행한 적이 없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다.
1만 명을 매료시킨 이 계정의 매력은 '진정성과 유쾌함'이 공존하는 콘텐츠 구성에 있다. 올디스 타코의 인스타그램 콘텐츠에는 타코 연구에 대한 진정성과 팀원들의 유쾌함이라는 2가지 주제가 줄곧 반영돼 왔다. 먼저, 맛있는 타코를 만들기 위해 미친 듯이 연구하는 모습을 담아낸 영상들이 첫 번째 유형이다. 단순히 회의하고 요리하는 과정이 아닌 연구에 관련된 재밌는 에피소드를 더하는 것이 핵심이다. 예컨대 팀원들이 타코의 주재료인 토마토를 공부하기 위해 화천 토마토 축제에 방문하고, 현장에서 구매한 토마토로 신메뉴를 테스트하는 릴스를 올린다. 지난 8월 농심과 포테토칩 올디스 타코 맛을 출시했을 무렵엔 위생복을 입은 채 농심 공장을 방문하고, 컬래버레이션 과자로 기존 메뉴인 메가 밤 스낵을 메가 포테토 밤으로 리뉴얼하는 릴스를 공개했다.
팀원들이 출연해 올디스 타코 특유의 유쾌한 브랜드 이미지를 표현한 사진들도 인기다. 두 손에 타코를 들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촬영한 레트로풍 인물 화보, 모든 팀원이 선글라스와 흰 티셔츠를 맞춰 입은 후 매장 앞에서 촬영한 단체 사진 등이 적절한 예다. 이런 올디스 타코의 인스타그램 피드는 실제 올디스 타코의 내부 문화와도 닮았다. 유쾌하게 일하지만 타코에 대한 열정만큼은 진심인 사람들. 올디스 타코가 인스타그램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올디스 타코 팀원들이 등장하는 인스타그램 콘텐츠 예시
올디스 타코는 빈틈을 파고들어 하나씩 새로움을 더하며 오픈과 동시에 가파르게 성장했다. 아무런 근거 없이 올디스 타코만의 개성을 고집하지 않았다. 국내 타코 맛집들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손님들이 아쉬워할 만한 부분을 공략해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었다. 정통 타코 맛을 부담스러워하는 손님들에게 대책이 될 수 있는 한국식 타코를 개발했고, 콘셉트가 유사한데다 요리 과정을 볼 수 없는 업계의 전반적인 매장 구조에 무료함을 느낄 손님들을 위해 빈티지한 오픈 주방형 매장을 내놓았다. 또한 이처럼 새로움을 중시하는 자세로 다른 타코 맛집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보기 드문 기발한 콘텐츠까지 선보이며 꾸준히 단골을 확보하기도 했다.
올디스 타코는 현재의 인기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맛과 공간으로 손님들을 즐겁게 만들기 위한 활동들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그 도전이 계속되는 한, 앞으로도 을지로3가역 8번 출구 앞에는 맛있는 타코 냄새가 진동할 것으로 보인다.
에디터 이한규 ㅣ 사진 출처 올디스 타코
올디스 타코 매장 및 포테토칩 올디스 타코 맛
외식업에 뛰어든 무대 미술 전공자
빈티지 덕후. 김항근 대표의 대학 시절을 압축해서 표현하면 이렇다. 본래 무대 미술을 전공한 그는 유독 빈티지한 무대를 애정했다. 오죽하면 옛날 것의 매력이 더 좋다는 의미로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 구관이 명관)'를 외치고 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선호하는 무대 스타일이 뚜렷한 탓에 다른 이들과의 협업이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원하는 길이 있는데 엉뚱한 곳으로 향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작업 과정의 대부분이 설레지 않아서 혼란스럽기만 했다. 이런 경험을 반복하다 보니 급기야 자신이 진정으로 무대 미술을 좋아하는지조차 헷갈렸다.
결국 대학교를 2년간 휴학했다. 단, 무작정 휴식을 취하는 데만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면 여러 경험에 도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패스트푸드점 라이더, 인형탈 아르바이트 등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일들을 이어갔다.
하지만 돌고 돌아 결국 마음이 향한 곳은 무대미술이었다. 나만의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고, 고민이 깊어지던 찰나에 의외의 곳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바로 '식당'이다. 손님이 관객, 매장이 무대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면 하나의 식당을 완성하는 것이 디테일하게 무대를 구현하는 작업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과 무대라는 결과물만 다를 뿐 사람들이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는 점에서 작업의 본질은 동일했다.
김항근 올디스 타코 대표
그렇게 2018년 김 대표는 용산구 어느 건물의 3층에 빈티지한 와인바를 열며 외식업에 첫발을 들였다. 와인바를 창업한 이유는 단순하다. 진짜 좋아하는 메뉴로 장사를 하고 싶어서였다. 김치도 못 먹을 정도로 심하게 야채를 편식하지만 파스타와 고기 메뉴만큼은 잘 먹는 그였기에, 이 2가지 음식과 잘 어울리는 업태인 와인바를 선택했다.
요리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밤낮으로 레시피를 연구했고, 원하는 맛을 완성한 끝에 야심 차게 매장을 열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손님 수가 빠르게 늘었다. 열심히 메뉴를 개발했다는 자부심은 있었지만 초보 사장님 입장에선 맛있어 하는 손님들의 표정을 보는 경험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진짜 맛있으세요?"라고 질문을 건넨 이유다.
그런데 와인바가 성행하던 2021년 9월, 김 대표는 갑자기 을지로3가역 주변 건물의 2층으로 와인바를 이전했다. 매장 운영이 안정화됐음에도 굳이 상권을 옮긴 건 '을지로'가 김 대표의 꿈의 무대였기 때문이다. 인쇄소 골목을 비롯해 투박하게 페인트칠 된 상가까지 곳곳에서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을지로는 빈티지 덕후의 마음에 쏙 들 수밖에 없었다. 사실 용산구에서 와인바를 시작한 것도 을지로에서 적합한 매물을 찾지 못해서였다.
그토록 바랬던 을지로 상권으로 이전하면서 매장명도 '올디스 하우스'로 바꿨다. 수없이 외치고 다녔던 올디스 벗 구디스에서 착안한 브랜드명으로, 이는 올디스 타코의 시작점이 됐다.
올디스 하우스의 인테리어 및 파스타 메뉴
불리한 상권에 정면돌파하다
와인바를 운영하던 김 대표는 어떤 계기로 타코 전문점을 차린 걸까? 사실 처음부터 타코를 판매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인쇄소 골목 주변의 마음에 드는 매물을 덜컥 계약한 후, 어떤 메뉴를 선보일지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이 타코였다. 지금의 올디스 타코 1호점 공간이 2022년 10월에 매물로 나온 것이 신호탄이 됐다. 을지로 핵심 상권이 아닌 인쇄소 골목 입구 쪽에 자리하고 면적도 약 4.5평이라 임대료가 저렴했다. 마침 1층에서도 장사를 하고 싶었지만 대부분 2~3층보다 임대료가 비싸서 고민 중이던 김 대표에게는 적합한 장소였다. 매물을 살펴본 후 다음날에 곧바로 계약한 이유다.
문제는 판매할 아이템이 부재하다는 것이었다. 이 좁은 공간에서 어떤 음식으로 승부해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더구나 보도와 붙어있긴 해도 거리 자체의 볼거리가 부족한 탓에 행인의 대부분이 스마트폰만 쳐다보며 주변 건물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인기 없는 거리에다 협소한 매장까지, 식당을 열기엔 최악의 조건이었다.
김 대표는 이 2가지 문제에 정면돌파할 아이템으로 타코를 떠올렸다. 2022년에 우연히 타코를 처음 먹고 상당히 만족했던 경험이 불현듯 생각난 것. 싫어하는 야채가 가득했지만 타코의 특성상 고기 육즙이 풍부하고 소스 맛이 강렬해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지독한 야채 편식자인 자신조차 만족할 정도면 다른 손님들에게도 소구력이 있을 거라고 내다봤다. 게다가 타코는 손에 들고 빠르게 먹는 음식이라 굳이 넓은 매장 홀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매장 밖에서 간단히 먹거나, 포장 주문하는 손님이 많을 만한 메뉴였다. 또한 요리 과정에서 풍기는 고기 및 각종 향신료 냄새로 행인들의 이목을 끌기에도 용이해 보였다.
올디스타코 매장 앞에 이어진 대기줄
그렇다고 올디스 타코의 성공 비결을 '상권에 어울리는 메뉴 선정'으로만 정의하기엔 무리가 있다. 메뉴 종류를 정한 건 전초전에 불과할 뿐, 올디스 타코는 4가지 세부 전략을 펼치며 핫한 맛집으로 자리매김했다.
마장동 한우와 청양고추로 만든 K-타코
올디스 타코는 '한국식 타코 전문점'으로 식당 콘셉트를 잡았다. 이유는 3가지다. 먼저 김 대표가 전국의 주요 타코 맛집들을 순회한 결과 대부분의 맛집이 오리지널 스타일의 정통 타코를 추구했다. 고기의 육향을 그대로 살리고, 이국적인 소스 맛을 극대화하는 등 정통 타코를 기준으로 보면 훌륭한 맛이지만 올디스 타코가 공략해야 할 상권 고객들의 입맛에는 낯설 위험이 있었다.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올디스 타코가 오픈할 거리에 주로 인근 인쇄소 및 회사의 직원들이 오갔는데, 대부분의 연령대가 중년층이었다. 식당이 입소문 나려면 가장 먼저 상권의 현재 고객들부터 사로잡아야 한다고 판단했고, 이 전략에서 보면 오리지널 타코를 고수하는 건 적합하지 않았다. 호불호 없이 즐길 수 있는 한국인 입맛에 맞춘 새로운 타코가 필요했다.
게다가 정통의 맛으로 승부하는 맛집이 즐비한 상황에서 굳이 똑같은 콘셉트로 대결하는 것도 주효하지 않다고 봤다. 오히려 '한국식 타코 전문점'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생성하는 것이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마지막으로 원래 멕시코 음식이지만 재료와 레시피에 따라 다양하게 현지화되는 타코의 매력을 고려했을 때도 한국식 타코를 개발하고 싶었다. 예컨대 오키나와에서는 안남미로 지은 밥 위에 타코의 주재료들을 듬뿍 올린 덮밥 형식의 타코 라이스가 인기 있듯, 한국을 연상시킬 수 있는 시그니처 메뉴를 꿈꿨다.
한국스러운 맛을 개발하기 위해 김 대표는 가장 먼저 오리지널 레시피부터 섭렵했다. 기존의 타코 요리법을 이해하지 못한 채 한국식 맛을 표방하는 건 기본기를 쌓지 않고 편법을 택하는 길이라고 여겼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해외 유튜브 영상들을 정주행하고, 프랜차이즈의 타코 메뉴를 포장해 성분표를 낱낱이 분석하며 연구를 반복했다.
그렇게 레시피를 숙지함으로써 올디스 타코만의 4가지 메뉴(올디스 타코, 비리아 타코, 타코 라이스, 메가밤 스낵)를 완성했다. 기본 버전인 올디스 타코를 비롯해 콘소메 수프를 넣어서 구운 비리아 타코, 밥으로 만든 타코 라이스, 나초 위에 각종 토핑을 뿌린 메가 밤 스낵까지 저마다의 개성을 갖추고 있다.
시계 방향 순서대로 올디스 타코, 비리야 타코, 타코 라이스, 메가 밤 스낵
모두 기존 레시피를 바탕으로 한국인 입맛에 맞춰 국산 식재료들을 더하거나, 일부 조리법을 변경해 개발한 메뉴다. 예컨대 비리아 타코에는 마장동 정육점에서 공급받은 한우 차돌과 양지를 활용한다.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 타코를 목표 삼아 주재료인 고기를 한우로 교체했다. 마찬가지로 타코 라이스에도 마장동 정육점에서 구매한 소고기 및 돼지고기를 토마토 소스에 조려서 올린다. 또한 본래 비리아 타코는 콘소메 수프에 찍어 먹는 음식인데, 포장 주문해서 먹기엔 불편하기 때문에 아예 조리 중에 수프를 넣어서 토르티야를 튀기듯 굽는 방식으로 바꿨다. 살사 소스 역시 멕시코에서는 양파, 토마토, 고수, 라임주스, 소금 등을 섞어서 제조하지만 올디스 타코에선 청양고추를 가미해 한국의 알싸한 매운 맛을 곁들인다.
동시에 한국인 입맛에 호불호가 갈릴 만한 재료의 맛을 완화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했다. '고수'가 대표적이다. 타코에 빠질 수 없는 식재료지만 특유의 향 때문에 호불호가 나뉘므로 향이 가장 덜한 고수를 쓰고 있다. 원산지마다 향의 세기가 달라서 전국을 수소문했고, 끝내 경동시장에서 향이 가장 덜한 고수를 찾는 데 성공했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그 메시지가 잘 전달될수록 손님들에게
올디스 타코의 이미지도 뚜렷해질 테니까요.
식재료 하나, 레시피의 일부를 수정하기까지
수차례 연구를 거듭했죠."
-김항근 올디스 타코 대표-
주방을 무대로 만든 퍼포먼스
'분식집처럼 타코 요리 과정을 보여주면 어떨까?'
김 대표의 머릿속에서 번뜩인 이 아이디어는 올디스 타코가 오픈 초반부터 빠르게 주목받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타코 맛집들을 방문할 때마다 그에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바로 꽁꽁 숨겨진 주방의 위치다. 고기를 굽고, 소스를 졸이고, 토르티야를 뒤집는 등 타코 요리 과정에서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가 다양한데 손님에게 공개하지 않는 점이 의아했다. 김 대표가 처음부터 오픈 주방형 인테리어를 고려한 이유다.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켜준 건 분식집 앞에서 얻은 영감이었다. 매장 전면에서 큰 철판에 떡볶이를 만들며 시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분식집을 보고, 타코 전문점에도 충분히 접목 가능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좁은 보도와 맞닿아있는 매물 특성을 고려해 보도와 마주 보도록 오픈 주방을 설계했다. 매장 밖에서도 구경 가능한 주방 구조를 만든 셈이다. 그리들(철판) 위에서 타코를 요리하는 퍼포먼스와 풍미 가득한 냄새로 행인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였다. 오픈 주방의 효과는 강력했다. 현란하게 타코를 완성하는 솜씨를 본 행인들은 걸음을 멈췄고, 바람 부는 가을과 겨울에는 을지로3가역 8번 출구 안쪽까지 타코 냄새가 진동해서 "냄새 맡고 방문했다"고 말하는 손님들도 급증했다.
올디스 타코의 오픈 주방 및 타코 메뉴
손님들에게 가감 없이 보이는 오픈 주방의 특성을 감안해 퍼포먼스를 세심히 설계한 묘수도 효과적이었다. 그리들 위에서 고기를 구울 때의 손 동작, 토르티야를 겹쳐놓는 방식, 타코에 각종 재료를 쌓는 순서까지 꼼꼼히 보완하며 군침 돌게 만드는 퍼포먼스를 완성했다. 동시에 청결을 위한 퍼포먼스 설계에도 힘을 쏟았다. 올디스 타코에선 아무리 바빠도 요리가 끝날 때마다 흘린 소스들을 즉시 닦고, 그리들 전용 행주를 깔끔하게 접어 놓는 것이 원칙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청결을 등한시하지 않는 것. 김 대표가 팀원들에게 매일 아침 당부하는 자세다.
그간 올디스 타코를 프랜차이즈화하자는 투자 제안을 모두 거절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지점을 급격히 늘리는 데 성공한다 해도, 모든 매장이 본점만큼의 디테일하고 청결한 퍼포먼스를 유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오픈 주방에서의 퍼포먼스는 올디스 타코에게 가장 효과적인 홍보 콘텐츠로 기능하기도 했다. 손님들이 타코 요리 과정을 촬영해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고, 이 자발적인 리뷰들이 쌓이며 올디스 타코가 SNS에서 핫한 맛집으로 떠올랐다. 여기에 스스로 콘텐츠의 재미를 높이기 위한 팀원들의 노력이 더해지며 홍보 효과가 극대화됐다. 화려한 모자를 쓰거나 선글라스를 낀 채 타코를 굽고 응대하는 광경은 올디스 타코 특유의 힙한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재료를 쌓는 순서와 행주를 접는 방식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사소한 부분들을 챙기는
노력들이 쌓여야 손님의 시선을 끌 수 있습니다.
하나씩 대충 하고 타협하기 시작하면
식당의 퍼포먼스를 완성할 수 없어요."
-김항근 올디스 타코 대표-
올디스 타코 특유의 힙한 분위기를 뽐내는 매장 팀원들
모서리 하나까지 의도해 만든 빈티지함
올디스 타코가 오픈 직후부터 주목받은 또 다른 비결은 '빈티지한 매장'에 있다. 빈티지 덕후인 김 대표의 취향이 한껏 반영된 결과다. 전체적인 콘셉트는 1990년대 미국에 있을 법한 타코 가게로 잡았다. 올디스 타코를 기획할 당시만 해도 국내 대다수의 타코 맛집들이 멕시코 현지의 분위기를 강조한 유니폼, 간판, 식기, 오브제 등을 활용했지만 김 대표의 접근법은 달랐다. 한국식 타코라는 새로운 메뉴 카테고리를 제안한 것처럼, 매장 디자인 기획에서도 다른 타코 맛집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방식을 꾀했다. 손님들을 단번에 몰입시킬 수 있는 무대 같은 매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콘셉트 방향성을 잡은 후엔 1990년대 미국 영화, 디자인 관련 잡지 등을 보며 당시에 유행하던 디자인 요소들을 접목시켰다. 강렬한 레드 톤의 네온사인형 간판, 회색빛 금속 재질로 꾸민 파사드(건물 외벽), 파사드에 밀도 있게 배치한 포스터와 스티커 등이 그 결과물이다. 회색 배경에 여러 색깔을 칠한 다채로운 조합은 주변 상가들과 구분되기에 충분했고, 특히 저녁에는 네온사인 조명 덕분에 매장이 더욱 돋보였다.
김 대표는 무대 미술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 인테리어 곳곳에 빛바랜 세월감도 채웠다. 오랫동안 사용했을 때 닳기 쉬운 부분에 의도적으로 스크래치를 내고, 노포의 거친 공간 느낌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페인트 칠을 했다가 벗겨냈다. 무대 미술을 전공하던 시절에 고민거리였던 빈티지한 취향이 오히려 식당을 디자인할 땐 비장의 무기가 됐다.
올디스 타코 매장 시공 과정 및 현재 외관
"식당 인테리어를 기획할 때
전시물처럼 부피가 큰 오브제를
배치하면 끝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손님들의 몰입감을 결정하는 건
우연히 마주하는 사소한 부분들입니다.
'이런 부분까지 의도했다고?'라는
인식을 줄 수 있어야 해요."
-김항근 올디스 타코 대표-
스마트폰 한 대로 확보한 1만 팔로워
올디스 타코는 이색적인 메뉴와 매장뿐 아니라 독특한 인스타그램 계정으로도 유명하다. 팔로워 수만 무려 1만 명, 릴스(짧은 영상) 조회 수는 평균 1만에서 최고 13만 회까지 기록한다. 스마트폰으로만 콘텐츠를 만들고, 지금껏 단 한 번도 광고를 집행한 적이 없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다.
1만 명을 매료시킨 이 계정의 매력은 '진정성과 유쾌함'이 공존하는 콘텐츠 구성에 있다. 올디스 타코의 인스타그램 콘텐츠에는 타코 연구에 대한 진정성과 팀원들의 유쾌함이라는 2가지 주제가 줄곧 반영돼 왔다. 먼저, 맛있는 타코를 만들기 위해 미친 듯이 연구하는 모습을 담아낸 영상들이 첫 번째 유형이다. 단순히 회의하고 요리하는 과정이 아닌 연구에 관련된 재밌는 에피소드를 더하는 것이 핵심이다. 예컨대 팀원들이 타코의 주재료인 토마토를 공부하기 위해 화천 토마토 축제에 방문하고, 현장에서 구매한 토마토로 신메뉴를 테스트하는 릴스를 올린다. 지난 8월 농심과 포테토칩 올디스 타코 맛을 출시했을 무렵엔 위생복을 입은 채 농심 공장을 방문하고, 컬래버레이션 과자로 기존 메뉴인 메가 밤 스낵을 메가 포테토 밤으로 리뉴얼하는 릴스를 공개했다.
팀원들이 출연해 올디스 타코 특유의 유쾌한 브랜드 이미지를 표현한 사진들도 인기다. 두 손에 타코를 들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촬영한 레트로풍 인물 화보, 모든 팀원이 선글라스와 흰 티셔츠를 맞춰 입은 후 매장 앞에서 촬영한 단체 사진 등이 적절한 예다. 이런 올디스 타코의 인스타그램 피드는 실제 올디스 타코의 내부 문화와도 닮았다. 유쾌하게 일하지만 타코에 대한 열정만큼은 진심인 사람들. 올디스 타코가 인스타그램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올디스 타코 팀원들이 등장하는 인스타그램 콘텐츠 예시
올디스 타코는 빈틈을 파고들어 하나씩 새로움을 더하며 오픈과 동시에 가파르게 성장했다. 아무런 근거 없이 올디스 타코만의 개성을 고집하지 않았다. 국내 타코 맛집들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손님들이 아쉬워할 만한 부분을 공략해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었다. 정통 타코 맛을 부담스러워하는 손님들에게 대책이 될 수 있는 한국식 타코를 개발했고, 콘셉트가 유사한데다 요리 과정을 볼 수 없는 업계의 전반적인 매장 구조에 무료함을 느낄 손님들을 위해 빈티지한 오픈 주방형 매장을 내놓았다. 또한 이처럼 새로움을 중시하는 자세로 다른 타코 맛집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보기 드문 기발한 콘텐츠까지 선보이며 꾸준히 단골을 확보하기도 했다.
올디스 타코는 현재의 인기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맛과 공간으로 손님들을 즐겁게 만들기 위한 활동들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그 도전이 계속되는 한, 앞으로도 을지로3가역 8번 출구 앞에는 맛있는 타코 냄새가 진동할 것으로 보인다.
에디터 이한규 ㅣ 사진 출처 올디스 타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