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제 맥주는 국내 주류 트렌드를 이끌었다. 수제 맥주, 즉 크래프트 비어는 대기업이 아닌 개인이나 소규모 양조장이 자체 개발한 제조법에 따라 만든 맥주를 칭한다. 자본에 구애받지 않고 독특한 스타일로 만드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주류법이 개정돼 유통 장벽이 허물어진 2014년을 기점으로, 제주맥주, 세븐브로이 등 수제 맥주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연이어 등장했다. 이들은 '4캔 만원' 시장을 형성하며 편의점 주류 코너에서 비중을 점점 넓혀갔고, 코로나 ‘홈술’ 유행과 맞물려 전성기를 맞이했다. 2020년 세븐브로이와 대한제분이 협업한 곰표밀맥주는 누적 판매 5800만캔을 달성하며 주류 업계에 새로운 역사를 써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려오는 수제 맥주 시장의 전망은 다소 어둡다. 위스키, 하이볼 등으로 주류 트렌드가 이동한 데다, '수제 맥주=편의점 맥주'로 이미지가 굳어진 뒤 쏟아지는 무분별한 컬래버레이션에 소비자들이 염증을 느꼈다. 오리지널비어컴퍼니의 송태훈 마케팅팀 팀장은 "수제 맥주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가 떨어지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오리지널비어컴퍼니는 이러한 수제 맥주의 침체기 속에서 2023년 전년 대비 182%의 매출 성장과 200% 이상의 판매량 성장을 보여 냈다. 이들의 전략은 바로 '트렌드를 쫓지 않는 것'. 치열한 홍보 경쟁으로 소문난 업계인만큼 다소 엉뚱하게 들리기도 한다. 패키징부터 유통, 마케팅까지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서 ‘맥주의 맛’이라는 본질적인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는 수제 맥주 브랜드, 오리지널비어컴퍼니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오리지널비어컴퍼니의 제품 월롱 블랑(Wollong Blanc), 불락 스타우트(Bullrock Stout), 문라이트(Moonlight), 코스모스 에일(Cosmos Ale).
이게 맥주야? 샴페인이야?
오리지널비어컴퍼니의 맥주를 처음 본 사람은 백이면 백 "이게 맥주야?"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맥주 하면 떠오르는 패키징인 캔 혹은 얇고 긴 입구 형태의 병 등이 아닌 샴페인 병에 맥주가 담겨있다. 유통 과정을 거쳐도 맥주의 맛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송태훈 오리지널비어컴퍼니 마케팅팀 팀장은 "최상의 맥주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패키징이 무엇인지 오래 고민했다"며 "결국 맥주가 햇빛을 받지 않도록 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빛이 투과되지 않는 검은 색에 가까운 병을 찾았다. 비슷한 선택지로 와인병도 있지만 샴페인 병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샴페인이 맥주와 유사하게 탄산이 함유된 주류이기 때문이다. 탄산압을 유지하기 위해 병 하단이 움푹 패게 설계돼 있다.
샴페인 병으로 패키징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프리미엄 이미지를 추구하게 됐다.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병에 붙이는 라벨은 명품 샴페인 '아르망 드 브리냑(Armand de Brignac)'의 라벨을 제조하는 곳과 같은 업체에 의뢰한다. 병을 막는 코르크는 포르트갈에서 100% 수입한다. 높은 비용은 물론 절차가 다소 비효율적이지만, 중국, 호주 등의 업체 샘플은 영 탐탁지 않았다. 결국 타협은 없었다. 이윤정 마케팅팀 매니저는 "수출입 통로가 막혔던 코로나 시기엔 코르크 마개를 구할 수 없어 맥주 생산을 못하기도 했다"며 웃었다.
모든 제품에 붙어 있는 퓨터 라벨은 명품 샴페인 브랜드 '아르망 드 브리냑'과 같은 업체에 의뢰한다.
철저히 '맛'을 위해, 전통적인 양조 방식 고수
샴페인 병으로 햇빛을 차단해야만 했던 이유는 오리지널비어컴퍼니의 맥주 양조 철학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맥주는 열처리와 살균 작업을 거친다.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파는 생맥주도 이름은 생(生)맥주지만 살균 작업을 거쳐 유통되는 맥주다. 하지만 오리지널비어컴퍼니는 살균을 하지 않고 효모가 살아있는 맥주를 만든다. 송 팀장은 "내부 시음에서는 물론 고객들도 효모가 살아있는 맥주를 마셨을 때 확실히 신선하다고 느꼈다"며 "효모균이 죽지 않기 위해선 모든 유통 과정이 냉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열처리도 해보고 이런저런 실험을 했다"고 말했다. 한참의 논의 끝에 운영진과 직원들은 결국 원래의 '오리지널' 비어를 고수하기로 결정했다. 역시나 타협은 없었다.
오리지널비어컴퍼니의 맥주의 또다른 특징은 오크통으로 많이 알고 있는 배럴(Barrel) 숙성을 거친다는 것이다. 대개 오크통에 숙성하는 주류는 와인이나 위스키로만 알고 있지만, 맥주 역시 오크통에서 익는 '배럴 에이징' 과정을 거치면 깊고 풍부한 맛을 내며 향도 더 살아난다. 그러나 대량 생산이 어려워 대기업이나 대량 유통 주류 방식에는 적합하지 않고,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도 일부 수제 맥주 브랜드만이 유지하고 있는 방식이다. 송 팀장은 "순간순간 트렌드에 연연하는 맥주가 아닌 전통적인 방식을 계속 고수하려 한다"고 말했다.
오크통에 숙성 중인 맥주 양조장 모습.
스포츠 마케팅으로 브랜드 인지도 확대
앞서 말했듯 오리지널비어컴퍼니의 맥주는 모든 유통 과정이 냉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물량 공세를 펼쳐 고객 접점을 확보할 수가 없다. 다른 맥주 브랜드와 다른 전략을 펼쳐 고객을 만나야만 했다.
이들의 슬로건은 'Memorable Moments'. 기억에 남을 만한, 혹은 기념하고 싶은 순간을 위해 찾은 돌파구는 스포츠다. KPGA(한국남자프로골프투어) LX챔피언십, 제네시스 챔피언십 등에 공식 후원사로 참여했다. 골프를 시청하거나 즐기는 연령층이 다른 맥주보다 가격대가 있는 오리지널비어컴퍼니의 맥주의 타깃 고객과 맞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강원도 홍천군에 있는 카스카디아 골프클럽에서 진행한 시음회 전경.
작년 5월에는 수제 맥주 최초로 잠실 야구장에 입점하기도 했다. 매장이 들어선 건 아니지만 KBO 경기 시즌에 부스를 운영한다. 맥주 브랜드 사이에서 야구장 입점은 피 튀기는 경쟁으로 유명하다. 입점 경쟁에 들이는 비용에 비하면 매출도 이익이 많이 남는 정도는 아니지만, 남녀노소 모든 연령대에 브랜드를 노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리지널비어컴퍼니가 잠실 야구장에 입점한 이유 역시 매출 성과보다는 고객 접점을 늘리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함이다.
오리지널비어컴퍼니는 수제 맥주 브랜드 중 최초로 잠실 구장에 입점했다.
선물하기 좋은 프리미엄 맥주로 포지셔닝
오리지널비어컴퍼니의 맥주는 고급스러운 패키지와 탁월한 맛 덕에 선물용으로 구매하는 고객이 많다. 선물하기 좋은 맥주로 명성을 얻으면서 작년 추석의 경우 전 달에 비해 약 400% 이상 판매량이 증가했다. 보통 선물용 술로는 위스키나 와인, 샴페인 등을 고르기 마련이었다.
송 팀장은 "이전에는 ‘맥주를 선물한다’는 개념이 없었다"며 "2만 원짜리 와인을 선물하면 욕먹지만 2만원짜리 최고급 맥주를 선물하면 다들 좋아한다"고 웃으며 설명했다. 다른 맥주 브랜드와 구분되는 포지션이기에 오리지널비어컴퍼니 역시 이를 적극 활용해 마케팅을 펼친다. 직영 매장에서 맥주병에 원하는 문구를 새길 수 있는 레이저 각인 서비스를 서비스로 제공하며, 주류 업계에서 큰 이벤트로 여기지 않는 달인 5월에 가정의 달을 기념해 프로모션을 기획하는 식이다.
기프트 세트.
오리지널비어컴퍼니는 맥주가 많이 팔리는 것, 그 이상의 목표를 갖고 있다. 송 팀장은 "해외처럼 국내도 맥주가 미식 영역으로 여겨지면 좋겠다"며 "그 지평을 넓히고 가장 대표적인 브랜드가 되는 것이 오리지널비어컴퍼니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 일환으로 '사워 맥주' 등 국내에서 선호되지 않는 맛의 맥주를 실험적으로 출시하는 시도 역시 이어오고 있다.
타협할 줄 모르는 이 브랜드의 행보는 한편으론 고집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장인 정신에 가까운 높은 기준치는 운영진을 비롯해 모든 조직원 한 명 한 명이 모두 맥주에 '진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만든 '오리지널' 맥주의 맛이, 많은 이들의 특별한 순간과 페어링 되어 빛을 발하길 바란다.
에디터 지희수ㅣ사진 출처 오리지널비어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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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비어컴퍼니의 제품 월롱 블랑(Wollong Blanc), 불락 스타우트(Bullrock Stout), 문라이트(Moonlight), 코스모스 에일(Cosmos Ale).
이게 맥주야? 샴페인이야?
오리지널비어컴퍼니의 맥주를 처음 본 사람은 백이면 백 "이게 맥주야?"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맥주 하면 떠오르는 패키징인 캔 혹은 얇고 긴 입구 형태의 병 등이 아닌 샴페인 병에 맥주가 담겨있다. 유통 과정을 거쳐도 맥주의 맛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송태훈 오리지널비어컴퍼니 마케팅팀 팀장은 "최상의 맥주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패키징이 무엇인지 오래 고민했다"며 "결국 맥주가 햇빛을 받지 않도록 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빛이 투과되지 않는 검은 색에 가까운 병을 찾았다. 비슷한 선택지로 와인병도 있지만 샴페인 병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샴페인이 맥주와 유사하게 탄산이 함유된 주류이기 때문이다. 탄산압을 유지하기 위해 병 하단이 움푹 패게 설계돼 있다.
샴페인 병으로 패키징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프리미엄 이미지를 추구하게 됐다.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병에 붙이는 라벨은 명품 샴페인 '아르망 드 브리냑(Armand de Brignac)'의 라벨을 제조하는 곳과 같은 업체에 의뢰한다. 병을 막는 코르크는 포르트갈에서 100% 수입한다. 높은 비용은 물론 절차가 다소 비효율적이지만, 중국, 호주 등의 업체 샘플은 영 탐탁지 않았다. 결국 타협은 없었다. 이윤정 마케팅팀 매니저는 "수출입 통로가 막혔던 코로나 시기엔 코르크 마개를 구할 수 없어 맥주 생산을 못하기도 했다"며 웃었다.
모든 제품에 붙어 있는 퓨터 라벨은 명품 샴페인 브랜드 '아르망 드 브리냑'과 같은 업체에 의뢰한다.
철저히 '맛'을 위해, 전통적인 양조 방식 고수
샴페인 병으로 햇빛을 차단해야만 했던 이유는 오리지널비어컴퍼니의 맥주 양조 철학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맥주는 열처리와 살균 작업을 거친다.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파는 생맥주도 이름은 생(生)맥주지만 살균 작업을 거쳐 유통되는 맥주다. 하지만 오리지널비어컴퍼니는 살균을 하지 않고 효모가 살아있는 맥주를 만든다. 송 팀장은 "내부 시음에서는 물론 고객들도 효모가 살아있는 맥주를 마셨을 때 확실히 신선하다고 느꼈다"며 "효모균이 죽지 않기 위해선 모든 유통 과정이 냉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열처리도 해보고 이런저런 실험을 했다"고 말했다. 한참의 논의 끝에 운영진과 직원들은 결국 원래의 '오리지널' 비어를 고수하기로 결정했다. 역시나 타협은 없었다.
오리지널비어컴퍼니의 맥주의 또다른 특징은 오크통으로 많이 알고 있는 배럴(Barrel) 숙성을 거친다는 것이다. 대개 오크통에 숙성하는 주류는 와인이나 위스키로만 알고 있지만, 맥주 역시 오크통에서 익는 '배럴 에이징' 과정을 거치면 깊고 풍부한 맛을 내며 향도 더 살아난다. 그러나 대량 생산이 어려워 대기업이나 대량 유통 주류 방식에는 적합하지 않고,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도 일부 수제 맥주 브랜드만이 유지하고 있는 방식이다. 송 팀장은 "순간순간 트렌드에 연연하는 맥주가 아닌 전통적인 방식을 계속 고수하려 한다"고 말했다.
오크통에 숙성 중인 맥주 양조장 모습.
스포츠 마케팅으로 브랜드 인지도 확대
앞서 말했듯 오리지널비어컴퍼니의 맥주는 모든 유통 과정이 냉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물량 공세를 펼쳐 고객 접점을 확보할 수가 없다. 다른 맥주 브랜드와 다른 전략을 펼쳐 고객을 만나야만 했다.
이들의 슬로건은 'Memorable Moments'. 기억에 남을 만한, 혹은 기념하고 싶은 순간을 위해 찾은 돌파구는 스포츠다. KPGA(한국남자프로골프투어) LX챔피언십, 제네시스 챔피언십 등에 공식 후원사로 참여했다. 골프를 시청하거나 즐기는 연령층이 다른 맥주보다 가격대가 있는 오리지널비어컴퍼니의 맥주의 타깃 고객과 맞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강원도 홍천군에 있는 카스카디아 골프클럽에서 진행한 시음회 전경.
작년 5월에는 수제 맥주 최초로 잠실 야구장에 입점하기도 했다. 매장이 들어선 건 아니지만 KBO 경기 시즌에 부스를 운영한다. 맥주 브랜드 사이에서 야구장 입점은 피 튀기는 경쟁으로 유명하다. 입점 경쟁에 들이는 비용에 비하면 매출도 이익이 많이 남는 정도는 아니지만, 남녀노소 모든 연령대에 브랜드를 노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리지널비어컴퍼니가 잠실 야구장에 입점한 이유 역시 매출 성과보다는 고객 접점을 늘리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함이다.
오리지널비어컴퍼니는 수제 맥주 브랜드 중 최초로 잠실 구장에 입점했다.
선물하기 좋은 프리미엄 맥주로 포지셔닝
오리지널비어컴퍼니의 맥주는 고급스러운 패키지와 탁월한 맛 덕에 선물용으로 구매하는 고객이 많다. 선물하기 좋은 맥주로 명성을 얻으면서 작년 추석의 경우 전 달에 비해 약 400% 이상 판매량이 증가했다. 보통 선물용 술로는 위스키나 와인, 샴페인 등을 고르기 마련이었다.
송 팀장은 "이전에는 ‘맥주를 선물한다’는 개념이 없었다"며 "2만 원짜리 와인을 선물하면 욕먹지만 2만원짜리 최고급 맥주를 선물하면 다들 좋아한다"고 웃으며 설명했다. 다른 맥주 브랜드와 구분되는 포지션이기에 오리지널비어컴퍼니 역시 이를 적극 활용해 마케팅을 펼친다. 직영 매장에서 맥주병에 원하는 문구를 새길 수 있는 레이저 각인 서비스를 서비스로 제공하며, 주류 업계에서 큰 이벤트로 여기지 않는 달인 5월에 가정의 달을 기념해 프로모션을 기획하는 식이다.
기프트 세트.
오리지널비어컴퍼니는 맥주가 많이 팔리는 것, 그 이상의 목표를 갖고 있다. 송 팀장은 "해외처럼 국내도 맥주가 미식 영역으로 여겨지면 좋겠다"며 "그 지평을 넓히고 가장 대표적인 브랜드가 되는 것이 오리지널비어컴퍼니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 일환으로 '사워 맥주' 등 국내에서 선호되지 않는 맛의 맥주를 실험적으로 출시하는 시도 역시 이어오고 있다.
타협할 줄 모르는 이 브랜드의 행보는 한편으론 고집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장인 정신에 가까운 높은 기준치는 운영진을 비롯해 모든 조직원 한 명 한 명이 모두 맥주에 '진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만든 '오리지널' 맥주의 맛이, 많은 이들의 특별한 순간과 페어링 되어 빛을 발하길 바란다.
에디터 지희수ㅣ사진 출처 오리지널비어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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