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도 혁신이 되나요? 생리대 만드는 IT회사 ‘해피문데이’

2023-07-18

“생리대는 가문의 원수에게도 빌려준다?”

남성들에겐 생소한 이야기지만 여성들 사이에선 유명한 인터넷 밈(meme)이다. 설령 원수 지간일지라도 월경이라는 공통된 경험 아래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데서 비롯했다. 월경에 대한 여성들의 끈끈한 연대 의식을 잘 보여준 사례가 바로 EBS 모바일 콘텐츠 브랜드 ‘MOMOe’가 2018년 자체 유튜브 채널에 올린 ‘생리대 실험’ 영상이다. 한 여중생이 길거리의 성인 여성들에게 생리대를 빌려달라고 부탁했는데 모든 여성이 싫은 기색 없이 생리대를 내주는 영상이었다. 심지어 생리대가 없었던 몇몇 여성은 이 학생을 직접 가까운 편의점으로 데려가 생리대를 사주기도 했다.

이처럼 생리대는 여성들의 삶에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생리대 관련 산업의 발전은 더디기만 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야 유기농 생리대, 친환경 생리대 등 생리대 원료의 성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생리대는 흡수력, 향기 등 기능을 강조하는 제품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당시 대부분의 생리대 제조 기업들은 생리대의 전성분은 물론 제조 과정, 기능 등 소비자가 생리대를 선택할 때 참고할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 

김도진 해피문데이 CEO



이에 김도진 해피문데이 창업자는 2017년 7월 여성들이 믿고 쓸 수 있는 유기농 순면 생리대를 직접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창업한다. 창업을 결심하는 데는 2016년 5월 발생한 ‘깔창 생리대’ 파동이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들이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을 생리대 대용으로 사용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김 대표 역시 이 뉴스를 접하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처음에는 창업이 아니라 가볍게 사이드 프로젝트 정도로 ‘생리대 기부 캠페인’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캠페인을 준비하다 보니 청소년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할만한 생리대를 찾기 어려웠다. 또한 생각보다 여성건강분야 서비스가 부족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결국 단순히 1회성 캠페인이 아닌 여성건강 서비스를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굳힌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해피문데이’다.

2017년 8월 해피문데이는 본격적으로 유기농 순면 생리대를 판매한다. 또 국내 최초로 생리대 정기구독 서비스도 도입했다. 창업 전 “아무도 사지 않을 것”이라던 유기농 순면 생리대는 이제 국내를 넘어 인도네시아 등 해외로도 수출 중이다. 2020년 9월 출시한 여성 건강 앱 ‘헤이문’은 누적 다운로드(IOS+AOS) 수 200만 건을 돌파하기도 했다. 그 결과, 해피문데이는 2021년 12월 110억 원 규모의 프리시리즈 B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해피문데이는 어떻게 생리대 제조업체를 넘어 월경과 관련한 콘텐츠와 앱 서비스를 다루는 팸테크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김 대표를 만나 그 이유를 들어봤다.


누가 생리대를 비싸게 사?

유기농 생리대? 유난이야, 유난!” 안전한 생리대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김도진 대표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당시 유기농 생리대를 생산하는 국내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생리대 사업을 추진하던 초창기 만난 투자자들도 “이미 독과점이 지속된 국내 생리대 시장에서 스타트업은 생존할 수 없다”며 김 대표를 만류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생리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소비 트렌드는 점점 안전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서 식품은 물론 화장품도 전성분을 공개하는데 생리대만은 예외였다. 김 대표는 “더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정 안되면 나와 친구들이 평생 쓰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단 만들어 놓고 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해피문데이는 신장 위구르 지역, 터키 등지에서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목화를 사용해 탑시트를 제작한다.


2016년 12월 김 대표는 순면 유기농 생리대를 만들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전국의 생리대 공장을 돌아다니며 생리대를 만드는 과정을 하나부터 열까지 뜯어봤다. 생리대의 구성 요소인 탑시트(피부에 직접 닿는 커버), 흡수체, 접착제 등의 원부자재 업체도 찾아가 꼼꼼히 살폈다. 그런데 김 대표가 원하는 수준의 순면 유기농 탑시트와 흡수체를 국내 원부자재 업체에선 찾을 수 없었다. 흡수력과 접착력을 높이거나 향기를 첨가하기 위해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순면’을 사용한다고 강조한 업체는 GMO(유전자 변형 작물) 목화로 제조하고 있었다. 그는 직접 유기농 성분과 관련된 논문을 찾아 읽고 모르는 것은 화학을 전공한 지인들에게 물어서 이해한 끝에 원부자재 샘플을 개발해냈다.

기껏 원부자재를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모든 공장에서 제조를 거부했다. 유기농 순면 생리대는 만들어봤자 너무 비싸서 안 팔린다는 이유였다. 초기 사업인 만큼 수량도 적게 찍어낸다고 하니 다들 난색을 표했다. 또한 당시 생리대 제조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 1억 원이 필요했는데 자금도 부족했다. 접착제, 포장재 등 구성 요소 하나하나 자신의 기준치에 맞는 제품을 만들고 싶었지만 욕심은 잠시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대신 최소한의 기준을 만족하는 해외 브랜드 제품을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김 대표가 ‘생리대 제조 회사’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안전한 생리대를 시작으로 해서 생리대 정기배송 서비스 등을 구축해 여성이 월경날을 보다 편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 여성건강 서비스를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우선은 타 브랜드 제품을 수입해 정기배송 서비스를 시작하고 자금을 모은 후 다시 생산에 투자하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2017년 8월  ‘해피문데이’는 문을 열었다.

그런데 해피문데이가 출범한지 3일 뒤 생리대 유해물질 파동이 일었다. 시중에 유통되는 일회용 생리대에서 생식 독성 물질과 발암물질이 검출된 것이다. 무해한 생리대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어떤 유해성분도 검출되지 않은 해피문데이 제품에 문의가 쏟아졌다. 오픈 후 1여년 간 월평균 매출이 200%씩 증가할 정도였다. 창업 한 달만에 첫 시드 투자도 유치하면서 생리대 제조를 위한 자금도 마련할 수 있었다. 마침 생리대 유해물질 파동 이후 국내 공장들 사이에서도 유기농 생리대 생산에 관심이 높아졌다. 2017년 12월 국내로 생산지를 옮겨 자체 브랜드 생리대를 제조할 수 있게 됐다.



‘커머스-콘텐츠-서비스’ 삼위일체

김 대표는 솔직히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유기농 순면 생리대에 대한 수요가 늘 것이라고 예측은 했지만 그 시기가 예상보다 빨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운’만으로는 꾸준한 매출 성장을 이루며 7년째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2018년 10월 생리대 전성분 표시제가 도입되면서 대다수의 생리대가 이 기준에 맞게 ‘안전’해졌고 경쟁도 치열해졌다.


그럼에도 해피문데이가 순항할 수 있었던 까닭은 창업 초기부터 여성이 월경 기간 동안 겪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주목했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로 출시한 ‘정기구독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개인이 직접 입력한 본인의 월경 주기에 맞춰 월경용품을 배송하는 서비스로 특허도 취득했다. 특히 자신의 피부 민감도나 월경량을 고려해 필요한 제품과 수량을 매월 맞춤형으로 구성할 수 있게 했다. 지난달에 주문한 월경용품이 남았으면 이번 달은 수량을 줄여서 구독하는 식이다. 월경주기가 불규칙한 이들은 배송 주기를 한 차례 건너 뛰거나 일시 정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구독 누적 배송 건수는 올 6월 기준 43만건에 달한다.

해피문데이가 구독 서비스를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은 ‘발상의 전환’ 덕분이다. 해피문데이는 생리대를 ‘제지용품’이 아닌 ‘여성 건강관리 용품’으로 봤다. 김 대표는 “여성에게 있어서 월경은 심박수 등과 마찬가지로 건강의 중요한 지표”라며 “생리대 구독을 통해 본인의 월경주기, 월경량 등 월경에 관한 정보를 쌓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 생리대 배송이나 판매 과정, 이용 습관 등에 전반적인 변화를 줄 수도 있었다. 대개 여성들은 월경 용품을 대량으로 사서 화장실에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럴 경우 큰 부피로 인해 자리를 많이 차지하기도 하고 보관을 잘못하면 곰팡이가 생기는 등의 불편함이 있었다. 정기구독 서비스는 이같은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솔루션이었다.

여성건강과 관련한 전문적인 콘텐츠를 글, 만화,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월경을 중심으로 한 여성건강 콘텐츠 채널을 운영하는 것도 고객층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됐다. 김 대표는 구독 서비스를 출시하기에 앞서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을 만나 월경과 관련한 불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때 기본적인 지식 자체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제가 생겨도 산부인과를 직접 찾아가기 두려워 온라인 속 잘못된 정보에 의지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에 해피문데이는 2018년부터 전 연령의 여성을 대상으로 여성건강 블로그, 유튜브 채널 ‘해피문데이’, 뉴스레터 ‘28레터’를 운영 중이다.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 약사, 보건학자 등 전문가들의 검수를 받거나 이들이 직접 작성한 콘텐츠를 제공해 신뢰도를 높였다. 유튜브 구독자는 1.5만 명, 뉴스레터 구독자 수는 17만 명에 달하는데 그간 믿을 수 있는 건강 정보에 대한 여성들의 수요가 높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헤이문에서는 해피문데이가 제공하는 정기 구독 서비스, 월경 주기 관리, 여성 건강 콘텐츠 등을 한번에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김 대표는 월경 주기 관리 앱을 개발했다. 2020년 9월 출시한 여성 건강 앱 ‘헤이문’이 그것이다. 헤이문은 기존 월경 주기 계산법에 비해 정확도를 높였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기존 월경 주기 계산법은 일반적인 주기 계산식에 개개인의 데이터를 집어넣고 평균을 내 결과값을 도출하는 원리였다. 때문에 월경이 불규칙한 이들은 자신의 주기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었다.

헤이문은 베타 테스트를 통해 500명의 데이터를 모아 8개월 간 학습했다. 예외들을 따로 그룹핑해서 케이스별로 처리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개발자 출신의 CTO와 간호사 출신의 PM(프로덕트 매니저)이 머리를 맞댔고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자문을 구하며 의학적인 자료를 토대로 경향을 분석하고자 했다. 그 덕분에 월경 주기 예측 평균 오차범위를 이틀이나 줄였다. 정확한 주기 예측을 바탕으로 평균 월경기간, 그 동안의 주기 변화 등 월경 관련 데이터를 해석해 리포트도 제공한다.

나아가 기존에 운영하던 커머스와 콘텐츠도 앱에서 이용할 수 있게 일원화했다. 앱 하나로 월경 주기와 건강 정보를 파악할 수 있고 이와 관련된 제품을 추천 받아 구매하거나 건강상태에 따른 의문점을 해소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편리함으로 인해 헤이문은 론칭 2년 8개월 만에 누적 다운로드 수 200만 회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국내 15~24세 여성 인구 중 30%는 헤이문에 가입해 있다.



생리대 제조회사를 넘어 펨테크 기업으로

해피문데이는 지난 3월 국내 최초로 디지털 탐폰(삽입 보조하는 어플리케이터 없이 흡수체와 제거용 실로만 구성된 체내형 월경용품)을 출시했다. 김 대표는 기존 월경용품의 불편한 지점을 계속해서 해소해 가겠다고 밝혔다.



해피문데이는 여성 건강 전반을 관리하는 헬스케어 기업을 지향하는 만큼 비즈니스 확장도 적극적으로 모색한다. 올 3월 생체리듬케어 테크 스타트업 루플에 전략 투자를 진행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 대표는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불면증이 많이 나타나고 월경 전후 호르몬 변화와 함께 수면 불편을 겪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여성 건강과 수면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만큼 월경 주기에 이어 수면 주기로도 헬스케어 사업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내를 넘어 해외 진출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특히 월경에 관한 정보도 부족하고 월경용품 옵션도 적은 해외 국가를 겨냥한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해피문데이는 창업 5개월 만에 쿠웨이트, 카타르 등 중동 지역에 수출을 시작한 데 이어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지역으로 판로를 넓히고 있다. 당시 샘플 제품을 들고 현지로 무작정 찾아가 데모데이(시연 행사)를 참석하다 보니 현지에서 파트너들의 연락이 먼저 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해피문데이의 목표는 ‘그날’이라고 표현되면서 예민과 불편함의 온상지처럼 여겨진 월경날에 대한 인식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것이다. 월경은 호르몬 사이클의 변화에 따른 생리현상이고 누구든 나눌 수 있는 이야기라고 꾸준히 외치는 이유다. 김 대표는 “월경날이 ‘왜 그렇게 예민해? 너 ‘그날’이야?’로 대변되는 부정적인 날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겪는 날이라는 것을 알려가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느리더라도 하나씩 바꿔간다면 아직 목소리가 닿지 않는 그 ‘누군가’의 월경날도 더 편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에디터  조지윤 방지혜|사진 출처  해피문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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