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집사들의 성지가 된 식물가게🌱

2023-08-03

‘반려식물’과 ‘식집사’.

코로나19 기간 동안 SNS에서 인기를 끌었던 키워드다. 동물과 정서적으로 의지하며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미의 '반려동물'처럼 정서적 안정과 만족을 위해 키우는 식물을 ‘반려식물’, 그리고 반려식물을 키우는 사람을 '식집사(‘식물’과 ’집사‘의 합성어)'라고 부른다. ‘식집사’는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 동안 대폭 늘어났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정서적 교감을 위해 반려식물을 들이는 이들이 많아진 것. 인스타그램 내 ‘반려식물’ 해시태그(#)를 단 게시글은 무려 111만 건이 넘는다. ‘식집사’ 해시태그를 포함한 게시글도 40만 건을 돌파했다.

‘꿈의 몬스테라’라는 수식어를 가진 ‘몬스테라 딜라체라타’. 얇게 찢어지는 잎이 특징으로 잎사귀 한 장에 600만 원을 호가할 정도로 고가의 개체다.



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흔하게 볼 수 없는 희귀식물에 대한 수요도 높아졌다. 보통 열대 관엽식물이나 아프리카 식물이 ‘희귀식물’로 불리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식물방역법상 흙이 붙어있는 식물은 수입이 불가능해서 대개 식물은 씨앗 상태로만 들여와야 하기 때문. 해외에서 들여온 씨앗을 순화(특정 지역의 기후 조건에 식물을 적응시켜 재배하는 일) 해 싹을 틔우는 과정이 어렵기 때문에 자연스레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가격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일례로 열대 관엽식물 ‘몬스테라’ 중에서도 흰색, 노란색 등 무늬가 있는 ‘무늬종 몬스테라’는 잎사귀 한 장이 수백만 원에 거래된다. 일반 몬스테라는 잎사귀 한 장에 1만원 대 수준인 것과 비교된다.

(1) ‘디시디아 하트드래곤’ (2) ‘버세라 파라독사’


구하기 어렵고 키우기도 어렵지만 잘 키우면 그 자체로 정서적 만족과 금전적 수익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인지 국내에서 희귀식물을 키우는 덕후들이 많다. 그리고 이들 희귀식물 덕후들이 모이는 성지가 바로 영등포에 있는 ‘그린포레스트’다. ‘디시디아 하트드래곤’, ‘버세라 파라독사’ 등 여느 식물 가게에서 찾기 힘든 희귀식물들이 매장 곳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 문현아 그린포레스트 대표가 직접 몇 년이고 공을 들여가며 싹을 틔운 아이들이다.

그린포레스트가 희귀식물로만 유명한 것은 아니다. 인스타그램에 1일 1포스팅을 하며 식집사들을 위한 가드닝 노하우도 전수하고 식물마다 어울리는 토분을 직접 디자인 및 제작해 식덕(식물 덕후)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 초록에 쌓여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문 대표를 만나서 15년 차 평범한 직장인에서 식집사들의 멘토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tip : 식덕 상식

무더운 한여름 낮에는 식물에 ‘물’을 주면 안 된다. 특히 야외에서 키우는 식물은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물을 맞으면 뿌리가 말 그대로 쪄진다. 때문에 한여름에 물을 줄 때는 햇볕을 피해 비교적 서늘한 곳에 식물을 옮겨서 물을 줘야 한다. 이처럼 식물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식물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도 많고, 쏟아야 하는 정성도 깊다. 식물을 키우다가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한 이유기도 하다.



유일한 쉼터가 된 식물

 

‘어차피 죽을 텐데 왜 자꾸 키우는 거지?’

어린 시절 문 대표는 화분을 자꾸 들여놓는 어머니를 보며 생각했다. 열심히 물을 주고, 햇빛을 쬐여도 시들거나 썩어버리는 식물을 보면서 돈이 아깝기도 했다. 그런 그가 서른 살이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식물을 하나 둘 사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보 식집사에겐 식물을 죽이는 일이 일상이었다. 분명 식물을 살 때 “일주일에 한 번만 물을 주면 된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따랐는데 말라죽는 식물도 있었다. 실내에서 키울 수 있는 식물이라고 해서 들였는데 금세 시들시들해지기도 했다. 많은 식물들을 떠나보낸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런 말들은 초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핵심 포인트만 말해준 것에 불과했다. 집의 습도에 따라 물주는 주기를 조절해야 하고 실내에서도 키울 ‘수’ 있지만 결국 잘 키우려면 적당한 햇빛과 통기성이 필수라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문 대표는 10여 년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식물 키우는 노하우를 하나 둘 체득해 갔다. 노하우가 쌓일수록 그가 키우는 반려 식물 수도 늘었다. 문 대표가 당시 살던 집은 작은 마당이 있는 단독 주택이었는데 어느 순간 마당을 식물로 빼곡히 채울 정도로 식물이 늘었다. 문 대표는 “식물을 키우는데 정해진 답은 없다”며 “정해진 날에 맞춰 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흙이 마르면 물을 주고 갑자기 물을 많이 줘서 과습이 생기면 통풍 잘 되는 야외 혹은 창가로 옮겨주는 식으로 식물의 상태에 맞춰 된다”고 말했다.

그린포레스트에는 플랜테리어(식물과 인테리어의 합성어)로 활용할 수 있는 작고 귀여운 식물 개체들도 즐비하다. (1)은 공기정화식물 '틸란드시아'를 인형 모양 토분에 심어 머리카락처럼 보이게 했다. (2)는 돌과 나무 등에 붙어 자라는 '부작난'의 한 종류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식물 키우기를 ‘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하나의 취미 활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생각이 바뀐 것은 2018년, 마흔을 앞두고 우울감에 빠져 있을 때였다. 15년차 웹 디자이너로 근무하던 그는 디자인업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 특히 디자이너의 전문성보다는 고객의 요구가 항상 우선시되는 업계의 관행과 업무 환경에 번아웃을 경험했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이 버겁게 느껴지던 때 식물은 큰 위로가 됐다. 식물을 키우는 일은 ‘나’만 잘 하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 세심히 관찰하며 잎에 탄성이 없으면 물을 주고 뿌리가 과하게 자라면 토분을 갈아주면 식물은 어느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었다. 문 대표는 “흙을 만질 때 비로소 살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며 “업무에 치여 지쳐 있다가도 식물을 만질 때면 숨통이 트였다”고 말했다.

 

 

식집사라면 한 번쯤 들어본 그곳


2019년 5월 문 대표는 영등포 좁은 골목에 그린포레스트라는 이름의 가게를 연다. 개점 초기 문 대표는 호주 식물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호주 식물을 주로 취급하는 매장을 열기로 했다. 식물 가게들은 대개 농장에서 식물을 도매로 사오는데 각 농장마다 취급하는 식물 종류가 다르다. 문제는 농장 정보를 알기가 어렵다는 점. 식물 가게들은 본인이 거래하는 농장의 정보를 공공연하게 공유하지 않고 비밀스레 관리하기 때문이다.

이에 문 대표는 ‘심폴’과 같은 온라인 식물 쇼핑몰에 등록된 전문 농장들의 소재지를 파악해 무작정 찾아갔다. 그가 찾아간 곳은 유칼립투스로 유명한 농장 ‘지산바이오’. 문 대표는 농장을 찾아가 농장 대표에게 무작정 식물 가게를 열고 싶은데 아는 게 없으니 식물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일면식도 없는, 심지어 웹 디자이너 출신인 사람이 다짜고짜 식물 가게를 열겠다며 도와달라고 하는데 냉큼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지산바이오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주말마다 대중교통으로 환승만 4번을 해가며 찾아오는 문 대표의 정성에 결국 지산바이오 측은 본격적으로 농장에서 식물을 도매로 매입하는 법 등을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이때, 열대 관엽 전문 농장 등을 소개받으면서 호주 식물 외에도 열대 관엽, 아프리카 식물을 매장에 들이게 됐다.

이 과정에서 그린포레스트가 식물 덕후들 사이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해외에서 다양한 종자와 묘목을 수입하던 전문 카페를 알게 돼 문의하던 중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그린포레스트 매장을 ‘픽업 매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것. 대부분의 식물 농장은 도시 외곽에 위치하기 때문에 고객이 직접 농장을 찾아 식물을 구매하기가 쉽지 않다는 불편함이 있다.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농장들이 온라인 몰을 운영하기도 하지만 고객이 온라인 몰에서 주문을 해도 결국 물건을 받기 위해서는 농장을 방문해야 한다. 식물은 부피도 크고 살아있는 생명체라서 택배로 배송하기 어렵기 때문.

이런 상황에서 그린포레스트가 픽업 매장 역할을 하면서 농장 입장에서는 고객에게 더 안전하게 식물을 전달할 수 있는 접점이 생겼고 그린포레스트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매장으로 식물 덕후들을 오게 만들 수 있는 유인책이 생겼다. 그 결과, 열대 관엽 마니아들이 그린포레스트를 자주 방문하게 됐고 자연스레 매장에서 판매하는 호주 식물, 아프리카 식물 등 다른 희귀식물에 대한 문의도 늘어났다.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시작했지만 창업 1년 만에 바로 옆 매장을 인수해 2배 규모로 확장한 배경이다. 문 대표가 매일 올리는 식물 일지를 보기 위해 인스타그램을 구독하는 이들도 늘어나 8월 기준 1.5만 명의 팔로워를 확보했다.



🌱싹 틔우는 데 1년이 걸려도 괜찮아!

그린포레스트가 희귀식물 덕후들 사이에서 조금씩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문 대표의 일도 많아졌다. 특히 희귀식물의 경우 국내에 잘 없는 식물이라 정보도 부족하고 기후 차이로 순화가 어렵기 때문에 고객이 많아진다고 마냥 좋은 일도 아니었다. 희귀식물을 찾는 고객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창업 초기 하루에 1~2시간씩만 자면서 직접 해외 셀러에게 해외 식물 키우는 방법을 문의하고 관련된 책과 해외 자료를 찾아 읽으며 공부했다. 아무리 물을 주고 햇볕을 쬐여도 감감무소식인 식물을 보면서 애가 타기를 수십 번.

(1) 문 대표의 가장 애정하는 비매품 '코미포라 크라우세리아나' (2) 3년 만에 틔운 보스웰리아 에롱가타의 본 잎


그러나 “내가 왜 굳이 희귀식물 사업을 시작했지?”라고 후회할 때쯤 살포시 싹을 틔우는 식물들을 보면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처음 키우기 시작했던 아프리카 식물인 ‘코미포라 크라우세리아나’의 경우 순을 틔우는 데 1년이 걸렸다. 문 대표는 “이 ‘아이’가 죽는 꿈을 수차례 꾸기도 했다”며 웃어 보였다. 아프리카 식물인 ‘보스웰리아 에롱가타’는 들여온 지 3년 만에 첫 본 잎을 틔워 내기도 했다. 문 대표는 “죽은 줄 알았던 식물도 시간이 지나보니 싹을 틔울 준비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식물에는 절대적으로 통하는 ‘이론’이 없기 때문에 성장 환경의 습도, 온도, 일조량 등을 잘 관찰하며 키우는 방식도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인내심과 기다림을 알게 되면 식물은 예뻐지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희귀식물은 키우기 힘든 탓에 가격대가 높다. 또한 아무리 고객이 원한다고 해도 문 대표가 생각하기에 해당 식물을 제대로 키울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식물을 팔지 않는다. 겨우 구한 식물이 분양받자마자 죽으면 식집사들의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애초에 그런 일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문 대표는 “열대 관엽의 경우에는 줄기를 잘라서 번식하면 죽어가던 개체라도 살릴 수 있지만 아프리카 식물은 한 번 죽으면 다시 살리기 어렵다”라며 “그래서 되도록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한 개체만 분양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식집사의 행복만큼 소중한 식물의 행복

식집사들에게 식물은 단순히 나무나 풀이 아니다. ‘반려식물’이라고 부르며 가까이 두고 애정을 담아 키운다. 그래서 식물도 중요하지만 그 식물을 담는 토분 역시 중요하다. 문 대표는 그린포레스트를 시작하면서 식물을 자식처럼 키우는 식집사들이라면 예쁜 토분에도 관심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또한 식물 덕후로서 이왕이면 식물이 더 돋보일 수 있고, 더 잘 자랄 수 있는 토분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초기부터 식물에 가장 어울릴만한 토분을 엄선하는 데 공을 들였다.

(1) 매장 내에 다채로운 토분을 구비해 두고 있다. (2) 세나 메리디오날리스는 긴 화분에서 길러야 반듯하게 자라난다.



이를테면, 아프리카 식물인 ‘세나 메리디오날리스’는 뿌리가 아래로 길어지며 성장하기 때문에 낮고 넓은 화분보다는 길쭉한 화분을 추천하는 식이다. 그렇게 각 식물마다 어울리는 토분을 구하고 거기에 식물을 담아 정성스레 찍어 올린 인스타그램 피드들이 결국 그린포레스트의 인기를 견인하는 힘이 됐다. 문 대표는 “똑같은 식물이라도 어떤 소재와 어떤 디자인의 토분에 담기는가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며 “개체마다 어울리는 토분을 고르는 데 심혈을 기울인 결과 토분에 대한 반응도 좋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1) 문 대표의 반려견을 모티브로 만든 화분 (2) 직접 주문제작한 토분으로 다양한 색상이 있다.



그는 디자인 전공을 살려 직접 도안을 그려서 토분을 주문 제작하기도 한다. 오직 그린포레스트에서만 구할 수 있는 토분을 갖기 위해 지방에서 오는 고객도 있을 정도다. 가장 인기가 있는 제품은 문 대표가 키우는 강아지를 모티브로 만든 토분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식물 가게이기도 하고 보유하고 있는 식물과 어울리게끔 제작한 만큼 토분만 따로 판매하지는 않는다.

올해로 그린포레스트를 운영한지 4년 차인 문 대표는 “여전히 식물로부터 위안을 얻는다”고 말한다. 반복되는 일상에 무감각해질 때마다 매일 조금씩 자라나는 식물을 보면서 기운이 생긴다고.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이 식물을 기르면서 평온함과 즐거움을 느끼기를 소망한다.

“식물은 사람하고 똑같아요. 좋아한다는 이유로 집착하면 시들어가요. 식물을 가까이 두고 싶다는 마음에 침대 맡에 두고 키우는 경우도 많은데 식물은 통풍이 잘 되는 창가에서 훨씬 행복해요. 아끼는 마음은 가지되 한 발짝 멀리서 지켜볼 때에 더 잘 살아가요.”



에디터 조지윤  |  사진 출처 그린포레스트, 브랜더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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