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찻집을 연남, 신사, 성수의 핫플로 만든 덕력

2023-10-11

"서울에서 거리도 먼데, 힘들게 여기까지 왔대?"

한 다원 관계자가 걱정할 정도로 하동의 차 재배지를 집처럼 드나드는 덕후가 있다. 동아시아 차 전문 브랜드 '맥파이앤타이거'의 김세미 대표가 그 주인공. 그는 거래처인 다원의 일꾼을 자처한다. 비탈길에 빽빽하게 심어진 차 나무에서 찻잎을 따고, 번거롭기로 소문난 유념작업에도 기꺼이 나선다. 새로운 차를 개발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차 제조 과정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찻잎에 깃든 정성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 더 크다.

*유념: 손으로 찻잎을 비벼 잎의 세포막을 파괴하는 과정으로 차의 맛과 향을 높이는 데 기여함.

2019년 맥파이앤타이거를 창업한 이유도 정성껏 만든 차가 국내 2030대에게 커피만큼 인기를 끌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서였다. 지난 4년간 차를 쉽게 맛보고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설계한 배경이다. 차 문화의 기원지인 중국 운남의 4가지 차를 크라우드 펀딩으로 선보인 것이 첫 번째다. 이색적인 구성과 패키지를 필두로 목표 펀딩액의 약 3000%를 달성하는 데 성공. 현재 가로수길과 성수역 인근에서 운영 중인 맥파이앤타이거 티룸 역시 2030대 손님들로 북적인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판매하는 이색 차들과 오프라인 티룸이 입소문을 타며 맥파이앤타이거 인스타그램 계정의 팔로워 수는 올 10월 기준 1만 5000여 명을 넘어섰다.

"그 나이에 차를 만난 건 행운이다." 20대 때 방문한 다실의 주인이 건넨 이 말을 매일 떠올린다는 김 대표. 젊은 층과 차 문화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이 덕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맥파이앤타이거 신사 티룸



💡사소한 궁금증

🍵맥파이앤타이거의 의미는?
까치(Magpie)와 호랑이(Tiger)가 그려진 조선 시대의 민화 '호작도'에서 영감을 받았다.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생활 속에서 즐기던 예술품인 호작도처럼 '일상 속에서 차를 쉽게 경험하도록 돕는 브랜드가 되겠다'는 의미다.


다실에 찾아온 낯선 젊은이

김 대표는 IT회사에 재직하던 시절, 지인에게 선물받은 중국식 다기 '개완'에 빠져 차에 입문했다. 밥그릇 모양의 개완에 찻잎을 넣고 뜨거운 물을 따르자 머리가 맑아지는 듯했다. 이후 업무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어김없이 개완을 꺼냈다.

자연스레 찻잎에 대한 호기심도 많아졌다. 당시엔 국내에서 티룸이나 티 오마카세 매장이 생소하던 때라 차를 배우려면 주로 다실을 가야 했다. 그렇게 김 대표는 인사동으로 다실 투어를 단행한다. 다실의 주방문객이 4050대인 탓에 20대인 그를 보고 “카페로 착각하고 온 것 아니냐”며 되묻는 매장도 많았다. 하지만 그에겐 로스팅 향이 가득한 카페보다 찻잎의 풀내음이 무성한 다실이 더 재밌는 놀이터였다.


먹거나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탐험가

김 대표는 차에 빠져들수록 선조들이 물처럼 마시던 차가 왜 지금은 커피보다 덜 대중적인지 의문이었다. 지인들에게 묻자 쉽게 입문하기엔 차 세계가 너무 어렵다는 반응이 일관됐다. 그도 그럴 것이 찻잎 종류만 수십 가지인데다 맛도 다양한데 이를 쉽게 경험할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그 순간 차 덕후는 창업을 결심했다. 여러 종류의 차를 쉽게 맛보고 이해하도록 돕는 브랜드라면 소구력이 있겠다고 판단한 것. ‘차를 더 가까이, 일상을 더 탄탄하게’라는 미션에 맞춰 맥파이앤타이거를 창업한 이유다. 콘셉트는 중국 운남의 차를 판매하는 동아시아 차 전문 브랜드. 동아시아 중에서도 전 세계 차의 기원지인 운남의 맛을 공유하겠다는 의도였다.

김세미 대표가 기록한 찻잎 가공 과정



하지만 현지의 차를 수급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운남 지역의 차를 소개하는 국내 파트너사와 함께 샘플을 확보해 상품별로 미세한 맛 차이를 확인해야 했다. 차 한 잔을 이루는 쌉싸름한 맛과 단 맛 등을 꼼꼼히 살핀 끝에 판매용 보이숙차, 보이생차, 홍차, 백차를 선정했다.


이후 한국에서 차 나무가 최초로 심어진 하동 지역의 차까지 상품군을 넓혔다. 김 대표는 하동의 다원들과 계약하기 전 무조건 현장을 찾는다. 어떤 과정으로 찻잎을 따고 볶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작업장에서 하루종일 함께 일하는 날도 다반사다. 비 속에서 찻잎을 따는 채엽부터 가마솥으로 덖어내는 제다까지 직접 참여하며 찻잎의 완성도를 꼼꼼히 살핀다.


맥주와 원두에서 찾은 유레카!

김 대표는 찻잎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다른 상품군에서 받은 영감을 기획 과정에 반영했다. 2019년 크라우드 펀딩으로 공개한 운남차 라인업이 그 결과물이다. 맥주 샘플러처럼 보이숙차, 보이생차, 백차, 홍차 이렇게 4가지 차를 3g씩 담았다. 최소 용량이 300g인 대부분의 차 상품과 달리, 4가지 맛을 한 잔씩 시음하며 입맛에 맞는 차를 찾도록 지원한 것이다.

4가지 차를 3g씩 소량으로 패키징한 운남차 라인업(운남 샘플러)



상품마다 부착된 일명 ‘티카드’는 원두 패키지에서 차용한 장치다. 차의 맛을 쉽게 표현한 문구와 우리는 방법 등이 정리된 손바닥 크기의 안내서다. 예컨대 백차용 티카드에는 말린 장미 향과 은은한 꿀맛이 나며 약 10회까지 우려도 그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외에도 다원지, 차를 만들 때 물의 적정 온도와 용량 등 세부적인 정보까지 확인할 수 있다. 맛, 로스팅 방식, 추천 드립 시간 등이 기재된 원두 패키지처럼 차를 제대로 이해하도록 관련 정보를 제공한 것이다.

“차 입문자들에게 티카드 내용을 수십 차례 검수 받았어요. 제가 적고 보니 대중에겐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한 분량이었죠. 입문자의 눈높이에서 알고 싶은 내용들만 추려야 했습니다.”

운남 샘플러는 이색적인 차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품으로 주목받으며 목표 펀딩액을 약 3000% 넘어섰다. 패키지를 받은 펀딩 참여자의 대부분은 이후 개별 차 상품들까지 추가 구매했다. 차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겠다는 기획의도가 실현됐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한 성과였다.

맥파이앤타이거의 티 카드 예시



직접 우려보고 실험하듯 마시는 공간

2020년에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 골목에 팝업스토어 ‘맥파이앤타이거 연남 티룸’을 열었다. 카페가 즐비한 상권에서 차에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을 꾀한 것. 손님이 자신이 주문한 차를 상세히 안내받은 후, 테이블에 세팅된 다기로 직접 우려 마실 수 있게 했다.

한식 디저트 매장 ‘단자리’와 공동 개발한 다식들도 이곳의 묘미다. 단자리의 수제 앙금을 가미한 쌀앙금 카스테라 및 앙금찰떡빙과 등이 한 예다. 전문가와 협업함으로써 디저트 개발에 들이는 에너지를 최소화하되 맛의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아이디어였다. 연남 티룸은 독특한 이용 방식과 메뉴들로 입소문나며 1년 간의 운영 기간 동안 꾸준히 손님을 확보했다.

연남 티룸 외관 및 단자리와 공동 개발한 앙금찰떡빙과



2021년엔 공식 매장 ‘신사 티룸’을 선보였다. 차에 대한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연남 팝업 때와 달리 100% 예약제로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직원들은 서빙에 투입되기 전 차 종류별로 세팅된 대본들을 숙지해야 한다. 차를 우릴 때 손님에게 공유해야 하는 정보들을 세세히 파악하기 위함이다. 예컨대 보이숙차를 주문한 손님에겐 첫 향을 맡도록 제안하고, “쌀밥처럼 고소한 향이 나며 카페인 함량이 낮아서 늦은 저녁에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고 안내한다. 손님들의 후기를 참고해 대본을 수정하는 경우도 많다. 하동의 잭살차용 대본에는 “토마토의 초록색 꼭지를 씹으면 이 맛이 날 것 같다”는 어느 손님의 후기를 반영했다. 푸릇한 풀 내음이 나면서 토마토처럼 적정 수준의 산미를 갖춘 잭살차의 특징을 생생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다.

한편 손님이 늘자 주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질문이 쏟아졌다. “혹시 밀크티도 있나요?” “저는 말차라떼를 먹고 싶은데 전통차뿐인가요?” 차 기반의 디저트 음료를 찾는 손님이 많아진 것이다. 김 대표는 전통차 기반의 티 베리에이션 메뉴들도 차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효과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렌지 및 망고 엑기스에 말차를 얹은 말차 선라이즈, 맥주와 말차를 섞은 말차 맥주 등 파격적인 메뉴들을 선보인 까닭이다. 이런 메뉴들 덕분에 차를 좋아하는 손님들이 지인과 함께 방문하기 좋은 매장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신사 티룸 내부 및 말차 선라이즈 메뉴



마지막으로 지난해 성수역 인근에 연 성수 티룸은 직장인들이 도심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 찾는 찻집을 표방한다. 퇴근 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은 직장인을 위해 1인 바 테이블을 설치했고, 어두운 톤의 조용한 공간으로 설계한 신사점과 달리 밝은 톤으로 채웠다.

“각 매장마다 차를 매개로 어떤 경험을 전할지 구체화합니다. 손님이 직접 우려 마시는 연남점, 조용한 공간에서 이색 차들을 맛보는 신사점, 바쁜 하루 끝에 차 한 잔의 평온함을 즐기는 성수점처럼요.”

티카드가 부착된 샘플러부터 각기 다른 콘셉트의 티룸까지. 그간 김세미 대표는 2030대가 차를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접점들을 기획했다. 원래 차란 그 종류와 마시는 방식이 어려운 게 매력인 만큼, 그 가치를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 덕후의 도전 정신은 향후 차 한 잔에 또 어떤 경험을 우려낼까? 차의 진가를 새롭게 공유하는 그의 아이디어를 앞으로도 기대해 본다.

맥파이앤타이거 성수 티룸 및 맥파이앤타이거 로고



에디터 이한규|사진 출처 맥파이앤타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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