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이 1020 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면서 직업으로서의 '보드게임 작가'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보드게임 작가가 되는 데에 반드시 따라야 하는 절차나 경로는 없다. 누구나 도전할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이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 한다. 스스로 보드게임을 만드는 성덕이 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국내 1세대 보드게임 작가인 김건희 작가와 함께 준비했다. 보드게임, 어떻게 만들어지고 돈은 어떻게 버는 것일까?
독일의 게임 박람회에서 인터뷰 중인 김건희 작가. 김 작가는 국내에서 '보드게임 작가'라는 길을 개척한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보드게임은 왜 ‘작가’라는 호칭을 쓸까
보드게임은 최소 두 명 이상의 사람이 게임판, 카드, 주사위 등 도구를 동원해서 하는 게임을 말한다. 트럼프나 화투와 같은 카드게임이나 체스, 바둑, 장기 등도 고전 보드게임으로 볼 수 있다. 보드게임 작가는 게임이 작동하는 룰을 설계하고 게임 방법, 규칙 등을 제작해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직업이다. 그렇다면 다른 PC 게임이나 콘솔 게임과 다르게 유독 보드게임만 ‘작가’라는 호칭을 쓸까? 보드게임의 뿌리가 출판 산업에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나 규모적으로나 보드게임 산업이 가장 발달한 곳은 독일을 대표로 한 유럽이다. 유럽에선 오래전부터 보드게임이 유행했고 출판사에서 제작과 유통을 하다 보니 표지에 작가의 이름을 적었다. 1990년 탄생한 고전 게임 중 하나인 ‘할리갈리’ 초판본 표지를 보면 작가인 ‘하임 샤피르’의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비디오나 모바일 등의 게임과 달리, 개인으로 활동하며 게임을 창작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작가’라는 호칭이 자리 잡았다는 후문이다.
승부보다 게임 자체에 호기심을 품는 사람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보드게임 작가라는 직업에 잘 맞을까. 평소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나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하다. 부업으로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실제로 국내에는 전업 작가보다 본업을 따로 두고 활동하는 작가가 더 보편적이다. 김건희 작가도 부업으로 만들다가 전업으로 전환한 케이스. 최근에는 보드게임 개발을 위한 책이나 과정도 생겨나 진입 장벽도 낮아졌다.
김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보드게임을 하며 ‘이 게임 되게 신기하다’,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지’와 같은 호기심을 가지는 이들이 있다. 보통 사람들이 이기고 지는데 치중하는 동안, 게임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김 작가는 “이런 ‘탐험형’ 플레이어들이 작가가 될 확률이 높다”라고 말한다.
보드게임, 이렇게 제작한다!
보드게임 제작을 위해 아이디어 작업 중인 모습.
Step 0. 생태계의 구조
앞서 설명한 대로 보드게임은 출판 산업에서 출발했기에 출시 구조 역시 구조와 유사하다. 출판 업계에 출판사가 있다면 보드게임 업계에는 ‘퍼블리셔’가 있다. 퍼블리셔는 상품 디자인, 제작, 마케팅, 유통 등 게임 출시 전반을 담당하며 게임을 팔리기 위한 상품으로 만들어 낸다. 보드게임 작가는 게임의 작동 원리와 규칙, 즉 메커니즘을 만들어 퍼블리셔와 계약을 맺게 된다. 최근에는 퍼블리셔를 통하지 않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직접 출시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다만 크라우드 펀딩의 경우, 디자인이나 상품 제작 등을 직접 해야 하므로 난이도가 더 높다.
Step 1. 아이디어는 어떻게?
보드게임 아이디어란 도대체 어떤 식으로 떠오르는 걸까. ‘카드 게임에 이런 룰을 적용하면 재미있겠군’ 하는 식의 메커니즘을 떠올리거나 ‘이런 배경의 게임이 있으면 인기를 끌겠는데’ 하는 식으로 테마를 떠올릴 수도 있다. 최근에는 이미 인기를 끈 PC나 모바일 게임, 웹툰 등을 보드게임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한다.
2022년 5월, 인기 모바일 게임인 '쿠키런'을 바탕으로 제작된 <쿠키런: 킹덤 보드게임>.
김 작가는 “취미로 할 때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게임을 제작했지만 전업 작가가 되니 의무적으로 아이디어를 떠올려야만 한다”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외주를 받아 이미 정해져 있는 주제나 교육 및 홍보와 같은 목적에 맞게 메커니즘을 개발하는 경우가 많다. 혹시 전업 작가만의 특별한 개발 비법이 있지 않을까, 슬쩍 물었지만 김 작가의 방식은 정직하기 그지없다.
“평소에 틈틈이 기록을 자주 해 둬요. 게임을 만들어야 할 때면 기록들을 꺼내 이리저리 조합해 봅니다. 모바일 게임, 방탈출 등 모든 게임을 가리지 않고 합니다. 모두 인풋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또, 책을 굉장히 좋아하고 많이 읽어요. 분야와 장르를 가리지 않습니다. 책에 힌트가 굉장히 많더라고요.”
즐겨하는 게임에 이런저런 변모를 해보는 데서 시작해도 좋다. 어떤 방향이건 전제가 있다면 보드게임을 많이 해본 플레이어가 아이디어를 떠올릴 가능성도 역시 높다는 것. 김 작가는 “결국은 플레이어 중에 작가가 된다”고 말한다.
김 작가의 보드게임 창고이자 작업실.
Step 2. 프로토타입 제작과 테스트
구상한 게임을 다른 이들과 실제로 플레이해보는 과정은 보드게임 개발에서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하는 과정이다. 김 작가 역시 동료 작가들과 정기적으로 모여서 서로 개발한 게임을 테스트한다. 프로토타입은 직접 인쇄하고 종이를 오려가며 손수 만든다.
테스트를 하다 보면 게임에 대한 건의가 들어오기도 하고 막상 재미가 없을 때도 있다. 별 수없이 계속 고치고 발전시키는 방법뿐이다. 게임 전체를 뒤집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도 있다고. 지루하고 힘든 과정이지만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스스로도 만족 못 하는 게임이 나만큼 그 게임에 대한 애착이 없는 다른 사람에게 재미가 있을 리 만무하다. 거듭되는 수정을 거쳐 어느 정도 재미가 있다 싶으면 퍼블리셔에게 제안한다. 게임 테마나 세계관도 함께 기획하여 제안하지만 그대로 반영되기도 하고 퍼블리셔의 손을 거쳐 완전히 새로운 테마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김 작가는 “판매와 직결되기 때문에 이 방면에 더 전문적인 퍼블리셔의 의견을 따르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프로토타입을 가지고 테스트를 하는 모습.
Step 3. 계약과 출시
마침내 출시 계약을 하게 됐다면 이제 셈을 해야 할 때다. 보드게임의 출시 계약 조건 역시 출판 업계와 유사하다. 작가와 퍼블리셔 간에 일정 기간 동안의 인세 계약을 체결한다. 보통 3년 혹은 5년 계약이며 계약 종료 시점에도 판매가 잘 되고 있다면 재계약을 하는 식이다.
계약을 맺은 뒤엔 게임을 출시해 사람들에게 선보일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반응이 좋아 베스트셀러 차트를 휩쓰는 상상도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시기가 언제가 되리라 단언하긴 힘들다. 게임 출시가 3개월 만에 되기도 3년이 걸리기도 하기 때문. 퍼블리셔 내에는 출시 아이템과 일정에 대한 계획 약 2년 치가 짜여져 있다. 그 틀 안에서 유행이나 시장 반응 등의 변수에 따라 급하게 새로운 게임을 끼워 넣거나 출시 순서가 밀리기도 한다.
Step 4. 저작권
지식과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산출물을 내다보니 민감한 문제가 있다. 바로 저작권이다. 김 작가에게 게임의 저작권은 작가가 가지게 되는지 묻자 “보드게임 업계가 굉장히 착하다”라며 운을 뗐다. 저작권은 물론 작가의 소유지만 과연 법적으로 과연 보호가 되는가에 대해서는 이슈가 있다고 한다. 디자인이나 상표권으로 등록을 하지 않은 이상, 법적으로 독점권을 보장받기 힘들다.
김 작가는 “사실 모든 게임이 완전히 새롭다고 말하긴 힘들다”며 “게임의 종류는 대부분 유사하고 기존에 있던 규칙을 응용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변형 혹은 조합해서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 내면 그 메커니즘을 인정해 주는 분위기다. 오히려 어떤 게임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공공연하게 밝히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영화 업계에서 어떤 영화에서 감명을 받아 ‘오마주’ 하는 것 또는 래퍼들이 ‘샤라웃’ 하는 것과 유사하다.
“사실 스토리도 기존에 있는 세계관과 스토리, 테마들을 보드게임에 맞게 녹여내는 것이죠. 그래서 작가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각각의 소스들을 조합하고 변주하여 완성된 보드게임을 만들어내는 역할인 거죠.”
결국 성실함과 좋아하는 마음
위의 과정들을 거쳐 김 작가가 지금까지 출판한 게임 수는 총 80개. “업계 사람들은 이 얘기를 하면 깜짝 놀란다”고 김 작가는 덤덤하게 말했다. 일반적으로 10개 만들면 겨우 하나 출시되는 꼴이라 활동한 10년 동안 80개의 게임을 출시했다는 건 곧 800개 가량의 게임을 만들었다는 것. 오래도록 많은 게임을 만들어왔지만 그는 타성에 젖기는커녕 점점 더 욕심이 생긴다.
출시되지 않은 김 작가의 프로토타입들.
“아는 만큼 보이다 보니 점점 더 어려워요. 스스로의 기준치, 그리고 시장이 요구하는 기준치도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게임 메커니즘 뿐 아니라 테마와 스토리, 그리고 프로덕트의 퀄리티도 높은 모든 면에서 개성을 갖춘 게임이 살아남게 될 거예요.”
그는 국내 보드게임 시장의 성장을 체감하고 있다. 관심을 갖는 사람도 늘었고 3~4년 전부터는 작가를 양성하는 정부 지원 사업이나 멘토링 프로그램이 생겨나, 양질의 교육을 받은 작가들이 계속 데뷔하고 있다. 그 역시 보드게임 제작 과정을 담은 책을 내고 클래스101 강의를 여는 등 후학 양성에 적극적이다.
“노래방이나 PC방에 비해 보드게임은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한 사람과도 가기가 편하잖아요. 마주 앉아 게임을 하며 가까워질 수 있고 뭔가 건전한 분위기이기도 하고.” (웃음) “앞으로도 보드게임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이고 보드게임 작가들도 더 많아질 거라 기대합니다. 실제로 지망하는 분들도 늘어나고 있고 연령대도 점점 낮아지고 있어요.”
국내 최초의 ‘보드게임 전업 작가’ 로 불모지를 개척해 온 김건희 작가. 그가 보드게임을 만들어온 비결은 결국 성실함과 좋아하는 마음이다. 보드게임이 너무나도 즐겁기에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하기를 기대하며 그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혹시 호기심이 생겼다면, 보드게임을 탐험하는 여정을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김 작가가 환영하며 당신을 맞이해 줄 것이다.
에디터 지희수|사진 출처 김건희 작가·(주)젬블로컴퍼니
이 글이 좋았다면?
퇴사합니다, 보드게임하려고요 | 1000그릇의 카레로 살아남은 카레머신 | 언제까지 고객 니즈만 분석할 텐가?
|
독일의 게임 박람회에서 인터뷰 중인 김건희 작가. 김 작가는 국내에서 '보드게임 작가'라는 길을 개척한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보드게임은 왜 ‘작가’라는 호칭을 쓸까
보드게임은 최소 두 명 이상의 사람이 게임판, 카드, 주사위 등 도구를 동원해서 하는 게임을 말한다. 트럼프나 화투와 같은 카드게임이나 체스, 바둑, 장기 등도 고전 보드게임으로 볼 수 있다. 보드게임 작가는 게임이 작동하는 룰을 설계하고 게임 방법, 규칙 등을 제작해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직업이다. 그렇다면 다른 PC 게임이나 콘솔 게임과 다르게 유독 보드게임만 ‘작가’라는 호칭을 쓸까? 보드게임의 뿌리가 출판 산업에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나 규모적으로나 보드게임 산업이 가장 발달한 곳은 독일을 대표로 한 유럽이다. 유럽에선 오래전부터 보드게임이 유행했고 출판사에서 제작과 유통을 하다 보니 표지에 작가의 이름을 적었다. 1990년 탄생한 고전 게임 중 하나인 ‘할리갈리’ 초판본 표지를 보면 작가인 ‘하임 샤피르’의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비디오나 모바일 등의 게임과 달리, 개인으로 활동하며 게임을 창작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작가’라는 호칭이 자리 잡았다는 후문이다.
승부보다 게임 자체에 호기심을 품는 사람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보드게임 작가라는 직업에 잘 맞을까. 평소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나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하다. 부업으로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실제로 국내에는 전업 작가보다 본업을 따로 두고 활동하는 작가가 더 보편적이다. 김건희 작가도 부업으로 만들다가 전업으로 전환한 케이스. 최근에는 보드게임 개발을 위한 책이나 과정도 생겨나 진입 장벽도 낮아졌다.
김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보드게임을 하며 ‘이 게임 되게 신기하다’,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지’와 같은 호기심을 가지는 이들이 있다. 보통 사람들이 이기고 지는데 치중하는 동안, 게임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김 작가는 “이런 ‘탐험형’ 플레이어들이 작가가 될 확률이 높다”라고 말한다.
보드게임, 이렇게 제작한다!
보드게임 제작을 위해 아이디어 작업 중인 모습.
Step 0. 생태계의 구조
앞서 설명한 대로 보드게임은 출판 산업에서 출발했기에 출시 구조 역시 구조와 유사하다. 출판 업계에 출판사가 있다면 보드게임 업계에는 ‘퍼블리셔’가 있다. 퍼블리셔는 상품 디자인, 제작, 마케팅, 유통 등 게임 출시 전반을 담당하며 게임을 팔리기 위한 상품으로 만들어 낸다. 보드게임 작가는 게임의 작동 원리와 규칙, 즉 메커니즘을 만들어 퍼블리셔와 계약을 맺게 된다. 최근에는 퍼블리셔를 통하지 않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직접 출시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다만 크라우드 펀딩의 경우, 디자인이나 상품 제작 등을 직접 해야 하므로 난이도가 더 높다.
Step 1. 아이디어는 어떻게?
보드게임 아이디어란 도대체 어떤 식으로 떠오르는 걸까. ‘카드 게임에 이런 룰을 적용하면 재미있겠군’ 하는 식의 메커니즘을 떠올리거나 ‘이런 배경의 게임이 있으면 인기를 끌겠는데’ 하는 식으로 테마를 떠올릴 수도 있다. 최근에는 이미 인기를 끈 PC나 모바일 게임, 웹툰 등을 보드게임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한다.
2022년 5월, 인기 모바일 게임인 '쿠키런'을 바탕으로 제작된 <쿠키런: 킹덤 보드게임>.
김 작가는 “취미로 할 때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게임을 제작했지만 전업 작가가 되니 의무적으로 아이디어를 떠올려야만 한다”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외주를 받아 이미 정해져 있는 주제나 교육 및 홍보와 같은 목적에 맞게 메커니즘을 개발하는 경우가 많다. 혹시 전업 작가만의 특별한 개발 비법이 있지 않을까, 슬쩍 물었지만 김 작가의 방식은 정직하기 그지없다.
“평소에 틈틈이 기록을 자주 해 둬요. 게임을 만들어야 할 때면 기록들을 꺼내 이리저리 조합해 봅니다. 모바일 게임, 방탈출 등 모든 게임을 가리지 않고 합니다. 모두 인풋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또, 책을 굉장히 좋아하고 많이 읽어요. 분야와 장르를 가리지 않습니다. 책에 힌트가 굉장히 많더라고요.”
즐겨하는 게임에 이런저런 변모를 해보는 데서 시작해도 좋다. 어떤 방향이건 전제가 있다면 보드게임을 많이 해본 플레이어가 아이디어를 떠올릴 가능성도 역시 높다는 것. 김 작가는 “결국은 플레이어 중에 작가가 된다”고 말한다.
김 작가의 보드게임 창고이자 작업실.
Step 2. 프로토타입 제작과 테스트
구상한 게임을 다른 이들과 실제로 플레이해보는 과정은 보드게임 개발에서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하는 과정이다. 김 작가 역시 동료 작가들과 정기적으로 모여서 서로 개발한 게임을 테스트한다. 프로토타입은 직접 인쇄하고 종이를 오려가며 손수 만든다.
테스트를 하다 보면 게임에 대한 건의가 들어오기도 하고 막상 재미가 없을 때도 있다. 별 수없이 계속 고치고 발전시키는 방법뿐이다. 게임 전체를 뒤집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도 있다고. 지루하고 힘든 과정이지만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스스로도 만족 못 하는 게임이 나만큼 그 게임에 대한 애착이 없는 다른 사람에게 재미가 있을 리 만무하다. 거듭되는 수정을 거쳐 어느 정도 재미가 있다 싶으면 퍼블리셔에게 제안한다. 게임 테마나 세계관도 함께 기획하여 제안하지만 그대로 반영되기도 하고 퍼블리셔의 손을 거쳐 완전히 새로운 테마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김 작가는 “판매와 직결되기 때문에 이 방면에 더 전문적인 퍼블리셔의 의견을 따르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프로토타입을 가지고 테스트를 하는 모습.
Step 3. 계약과 출시
마침내 출시 계약을 하게 됐다면 이제 셈을 해야 할 때다. 보드게임의 출시 계약 조건 역시 출판 업계와 유사하다. 작가와 퍼블리셔 간에 일정 기간 동안의 인세 계약을 체결한다. 보통 3년 혹은 5년 계약이며 계약 종료 시점에도 판매가 잘 되고 있다면 재계약을 하는 식이다.
계약을 맺은 뒤엔 게임을 출시해 사람들에게 선보일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반응이 좋아 베스트셀러 차트를 휩쓰는 상상도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시기가 언제가 되리라 단언하긴 힘들다. 게임 출시가 3개월 만에 되기도 3년이 걸리기도 하기 때문. 퍼블리셔 내에는 출시 아이템과 일정에 대한 계획 약 2년 치가 짜여져 있다. 그 틀 안에서 유행이나 시장 반응 등의 변수에 따라 급하게 새로운 게임을 끼워 넣거나 출시 순서가 밀리기도 한다.
Step 4. 저작권
지식과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산출물을 내다보니 민감한 문제가 있다. 바로 저작권이다. 김 작가에게 게임의 저작권은 작가가 가지게 되는지 묻자 “보드게임 업계가 굉장히 착하다”라며 운을 뗐다. 저작권은 물론 작가의 소유지만 과연 법적으로 과연 보호가 되는가에 대해서는 이슈가 있다고 한다. 디자인이나 상표권으로 등록을 하지 않은 이상, 법적으로 독점권을 보장받기 힘들다.
김 작가는 “사실 모든 게임이 완전히 새롭다고 말하긴 힘들다”며 “게임의 종류는 대부분 유사하고 기존에 있던 규칙을 응용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변형 혹은 조합해서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 내면 그 메커니즘을 인정해 주는 분위기다. 오히려 어떤 게임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공공연하게 밝히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영화 업계에서 어떤 영화에서 감명을 받아 ‘오마주’ 하는 것 또는 래퍼들이 ‘샤라웃’ 하는 것과 유사하다.
“사실 스토리도 기존에 있는 세계관과 스토리, 테마들을 보드게임에 맞게 녹여내는 것이죠. 그래서 작가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각각의 소스들을 조합하고 변주하여 완성된 보드게임을 만들어내는 역할인 거죠.”
결국 성실함과 좋아하는 마음
위의 과정들을 거쳐 김 작가가 지금까지 출판한 게임 수는 총 80개. “업계 사람들은 이 얘기를 하면 깜짝 놀란다”고 김 작가는 덤덤하게 말했다. 일반적으로 10개 만들면 겨우 하나 출시되는 꼴이라 활동한 10년 동안 80개의 게임을 출시했다는 건 곧 800개 가량의 게임을 만들었다는 것. 오래도록 많은 게임을 만들어왔지만 그는 타성에 젖기는커녕 점점 더 욕심이 생긴다.
출시되지 않은 김 작가의 프로토타입들.
“아는 만큼 보이다 보니 점점 더 어려워요. 스스로의 기준치, 그리고 시장이 요구하는 기준치도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게임 메커니즘 뿐 아니라 테마와 스토리, 그리고 프로덕트의 퀄리티도 높은 모든 면에서 개성을 갖춘 게임이 살아남게 될 거예요.”
그는 국내 보드게임 시장의 성장을 체감하고 있다. 관심을 갖는 사람도 늘었고 3~4년 전부터는 작가를 양성하는 정부 지원 사업이나 멘토링 프로그램이 생겨나, 양질의 교육을 받은 작가들이 계속 데뷔하고 있다. 그 역시 보드게임 제작 과정을 담은 책을 내고 클래스101 강의를 여는 등 후학 양성에 적극적이다.
“노래방이나 PC방에 비해 보드게임은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한 사람과도 가기가 편하잖아요. 마주 앉아 게임을 하며 가까워질 수 있고 뭔가 건전한 분위기이기도 하고.” (웃음) “앞으로도 보드게임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이고 보드게임 작가들도 더 많아질 거라 기대합니다. 실제로 지망하는 분들도 늘어나고 있고 연령대도 점점 낮아지고 있어요.”
국내 최초의 ‘보드게임 전업 작가’ 로 불모지를 개척해 온 김건희 작가. 그가 보드게임을 만들어온 비결은 결국 성실함과 좋아하는 마음이다. 보드게임이 너무나도 즐겁기에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하기를 기대하며 그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혹시 호기심이 생겼다면, 보드게임을 탐험하는 여정을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김 작가가 환영하며 당신을 맞이해 줄 것이다.
에디터 지희수|사진 출처 김건희 작가·(주)젬블로컴퍼니
이 글이 좋았다면?
퇴사합니다, 보드게임하려고요
1000그릇의 카레로 살아남은 카레머신
언제까지 고객 니즈만 분석할 텐가?